고향이란 무엇일까,태어난 곳일까,어릴적부터 오랫동안 살아온 곳일까.
요즈음 같이 산업화가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실천목표로서 추진되고
있는 때에는 산업화의 특징인 빈번한 인구의 이동에 따라 고향의 개념이
점차모호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산업화에 따른 물질적인 풍요만으로는 왠지 공허해지는
것은 퍽이나 재미있는 현상이다.
필자는 태어나 철들때까지 자란 곳이 경상도라 누가 뭐래도 분명한 경상도
사람이지만 인연이 되어 전라도 처녀의 혼인을 맺고 전라도의 중십도시격인
광주에서 일을 하고 있다.
편한 생각대로라면 필자는 외지인이고 필자에게 호남지방은 타지이지만
필자의 고집스런 이성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화중에 고향얘기가 나오면 애써 "내고향은 대한민국이오"하는
것은 혹시 고향콤플렉스의 한표현은 아니었는지.
그러던 필자에게 진실로 고향의 정,고향의 사람,고향의 냄새를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다가왔다.
그것은 "민학회"와의 만남이었다.
참으로 우연이었지만 필자에게는 다행이요,행운이었다.
필자가 광주에 와서 터를 잡고 업무의 흐름을 나름대로 추린데에는
광주상의 박 홍상근부회장님의 애정어린 보살핌이 컸다.
광주의 생활이 어느정도 손에 익을 무렵 그분은 민학회를 소개해 주셨다
한달에 한번 지역의 이곳 저곳을 답사하다보면 지역도 알게되고 사람도
많이 알게될 것 같아 답사에 참여해 보았다.
그때가 89년7월.
이렇게 맺어진 민학회와의 인연이 이제 어언 3년이 되어 간다.
민학회는 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감추어져 있는 진정한 우리의 전통적인
것들을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되찾아 의미를 새겨보자는
취지로 지난86년8월30일 창립된 모임이다.
다양한 겅험과 직업을 가진 회원들이 한달에 한번 일요일을 택해
이루어지는 답사를 통해 "민학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누가 잡아 끌지도 시끄벅적한 알림도 없는데 그사람들이 그리워지고
그행선지가 고향같기만한 곳-그래서 "일"때문에 그일요일을 빼앗길때면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에게는 박 홍 "민학회"회장님과 아울러 금호문화재단 이강재전무님
대기산업 길정채전무님 광주은행 양회천전무님과의 만남은 민학의 즐거움중
으뜸이다.
89년8월 1백2일로 고흥의 나로도 답사에서 만난 공옥진여사도 잊지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