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신화의 주신 바커스는 두번 태어난다. 한번은 인간의 여체에서,또
한번은 신의 허벅지에서 태어난다. 테베왕의 셋째딸 세멜라가
대신제우스의 아이를 잉태하자 헤라여신은 그녀에게 아기아버지가
괴물이라고 속인다. 그녀가 제우스신에게 정체를 밝히라고 귀찮게 대들자
대신은 벼락으로 징벌한다. 그러나 6개월된 태아는 자신의 넓적다리 속에
넣었다가 열달을 채워 세상에 내놓는다.
그래서인가. 주신 바커스의 신격에는 극단적 양면세계가 존재한다.
인간이 그와 교제하면 정열과 쾌락,그리고 낭만적 예술문화의 경지를
맛볼수 있지만 반대로 방탕과 타락,부패와 광란의 세계로 젖어들기도 한다.
곧 술은 "잘마시면 약,잘 못마시면 독"이 된다는 뜻이다.
주신의 포도주제조기법을 전수받아 음주문화를 제대로 확립한 나라가
있다면 단연 프랑스를 들수있다. 정통 프랑스요리에는 보통 5 6종의 술이
등장한다. 식전에 위스키나 브랜디,본식에는 포도주,후식에는 샴페인을
마신다. 그리고도 마지막에 코냑 한잔을 더 즐겨야 코스가 끝난다.
격식도 까다롭다. 생선에는 백포도주,육류에는 적포도주를 곁들인다.
손님이 스스로 술을 따라 마시면 큰 실례이고 주인이 따라줄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또 코냑을 안주와 함께 들면 촌놈이 된다. 물론 술잔을
주고받지도 않으며 폭음은 절대 금물이다. 술맛과 향에 따라 마시는
방법까지 구분하는 그들의 섬세한 감각과 멋을 살펴보면 낭만의 주신
바커스의 면모가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음주문화는 아무래도 육삭둥이 주신의 면모다.
어지러운 술판에는 오직 취하기 위한 만용만이 존재한다. 마치 사활의
격전장에 나선양 퍼마시기에만 열중하고,또 더마시기를 격려하는
"위하여"란 호령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용어도 마냥 전투적이다. 맥주잔에 양주잔을 뇌관처럼 심어놓은
"폭탄주",반대로 맥주잔에 양주,양주잔에 맥주를 채우면 공포의
"수소탄주"가 된다. 게다가 단숨에 이런 독배의 고지점령을 명령하는
"놓털카찡떼오". 그래도 성이 안차면 좌우로 잔을 돌리는 우격다짐도
등장한다.
그런데 10여년전 "폭탄주"를 제조하고 전투식음주문화를 선도했던 군이
이번에 "건전음주모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긴 군의 범죄형사고 70%가
잘못된 음주관행에서 나왔다니 개선이 시급한 일이다. 결자해지의 의미는
없겠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바커스주신의 또다른 면모,낭만과
예술의 건전한 음주풍토가 조성될 것인가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