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일성주석의 생일(4월15일)에 맞추어 남한기업들에 8억-10억
달러의 "선물용품"을 발주했다는 일부 외신보도가 업계를 당혹케하고
있다.
외신보도의 진원지가 된 선경은 물론 삼성물산 (주)대우 럭키금성상사
코오롱상사등 주요 대북교역업체들은 외신보도를 일단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하면서도 이같은 보도가 나오게된 경위와 배경을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북한이 발주했다는 비누 치약 시계 가전제품등은 실제 북한에서 당장
필요로 하고 있을 뿐아니라 소규모이나마 남북한간 교역이 이루어진
사례도 있어 보도자체만은 "전연 허구는 아닐 것"이라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해마다 "4.15경축절"을 앞두고 조총련계 기업등을
통해 선물명목의 소비재를 대량 구입했던 전례가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내 조총련세력의 약화등으로 소요물량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남한기업들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는만큼
구입선을 일부 남쪽으로 돌리려는 시도가 있어왔던게 사실이다.
다만 이번 외신보도처럼 대한발주규모가 과연 "억대"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게 업계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북한은 지난해초 이후 (주)선경 삼성물산 럭키금성상사 효성물산등
국내 종합상사들과의 접촉을 강화,소비재 반입상담을 벌여왔다.
이번 외신보도의 당사자인 (주)선경의 경우 작년초 재미교포가 운영
하는 대북한 전문교역업체인 세진상사를 통해 수백만달러 규모의 의류
가전제품등 "4.15 경축절용 소비재"의 대북반출 상담요청을 받은 일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담과정에서 북한이 현금결제가 아닌 구상무역을 제의
한데다 가격도 너무 낮추는 바람에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상담이 중단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삼성물산도 지난해 11월 세진상사를 통해 가전제품등 5백만달러어치의
소비재반출 요청을 받았으나 채산이 맞지않는 것으로 판단,상담에 적극
응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효성물산의 경우 지난해 3월 북경지사를
통해 북한에 흑백TV 2만대(3백만달러) 설탕(2백만달러)등을 내보내는
대신 복어 홍어 오징어등 수산물을 들여오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북측으로 부터의 수산물 반입이 여의치 않아 대응상품 반출이 늦추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럭키금성상사는 지난연말 북한과 무연탄 10만t(4백만달러)과 남한산
컬러TV 5천대, 설탕 5천t,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7백t을 맞바꾸기로
하는 구상 무역계약을 체결,지난달 이중 무연탄 2만여t TV 2천1백대
LDPE 2백t을 1차로 맞교환한데 이어 오는 4월께 나머지물량을 주고 받을
예정이다.
이밖에 현대종합상사도 지난해 중반 중국거래선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선박용기름과 함께 TV등 가전제품의 반입요청을 받고 상담을 진행중이며
(주)대우 (주)쌍용 코오롱상사등도 제3국등지를 무대로 소비재반출
상담을 진행하고있다.
이처럼 남북한간에 오가고 있는 대북반출 상담을 모두 합쳐봐야
천만달러대에 불과하다. 물론 종합상사 이외의 중소무역업체들도
대북교역에 활발히 나서고는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반출보다는 반입에
치중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8억-10억달러의 상담"은 아직은 "낭설"
일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북한의 연간 총수입규모는 28억달러선에 머물고있고 지난해 남북한간의
반출입 규모도 2억달러에 불과했다.
"억대"의 반출이 "4.15"까지 이루어진다는 것은 단순 계산상으로도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는게 관련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정도 규모의
물량이 북한에 공급되려면 지금쯤 계약이 완전히 이루어져 선적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남북한간에 완전 직항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홍콩 동경등지에서 컨테이너 화물의 환적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자면 선박수배의 어려운 사정등을 감안할때 제품생산부터 북한광구
하역까지 최소한 2개월은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종합상사들의 예에서 보듯 북한은 심각한 외화난으로 반입물품의
결제를 현금이 아닌 수산물 광산물등으로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북한의 비좁은 항만사정과 어려운 생산사정등을 감안할때
억대달러의 물물교환이 단기간내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해볼때 이번 외신보도는 "진실일 수 없다"
고 대북교역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이따금씩
외신을 탔던 "증폭보도"의 확대판이라는게 이들의 결론이다.
업계는 "낭설"로 확인된 이번 외신보도의 진원지가 과연 어디이며
"제보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도 부산. 우선 외신보도에서
인용된 선경이 실제 제보자인지에 대해 설왕설래. 선경은 "AP AFP등
서방통신기자들과 최근 대북교역과 관련,일절 접촉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업계에서도 선경이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8억-10억달러 반출"을
입에 올렸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있다. 다만 선경관계자가 지난해
상반기 이루어졌던 수백만달러 규모의 반출상담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다른 기업들의 반출추진 규모를 설명한 것이 "증폭전달"됐을 가능성에
비중을 두는 모습.
이 보다는 국내기업이 아닌 주한일본종합상사등 "제3자"가 규모를
부풀렸을 가능성에 더 비중을 두는 관계자들이 많다. 이경우 최근
남북한간의 직교역 움직임등 활발해지는 교류를 경계한 "제3국기업"
관계자들이 실제규모를 증폭시켜 북한 당국자들을 혼미에 빠뜨려
대남한교역 확대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기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이다.
종합상사 관계자들은 이번 "외신소동"이 경위야 어쨌든 모처럼 활발
해질 조짐을 보여온 우리기업들의 대북교역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남한과의 "체제경쟁"과도 관련,교역 사실의 소상한 공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북한당국이 이번의 "증폭보도"에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일
것만은 분명하다. 또 북한의 "4.15경축절 선물용품 조달"이 액면그대로
김주석의 생일기념만이 목적이 아닌 북한국민들이 절대 필요로 하는
생활용품의 배급 목적에 활용돼 왔다는 점을 감안할때 파장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모종합상사 대북교역 관계자는 "최근 북한으로부터 수백만달러의 추가
생필품 공급요청을 받고 상담을 진행키로 했었다"고 밝히고 "이런식의
불확실한 보도가 계속될 경우 앞으로도 계속될 "4.15특수" 활용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