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부촌’ 서울 청담동이 미술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22년부터다. 국내 최대 규모 미술 행사인 프리즈 서울이 인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화이트큐브를 비롯한 외국 유력 화랑들이 청담동에 진출한 것도, 국내 화랑들의 강남 이전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를 전후해서다. 그 덕분에 청담동은 서울 화랑가(街) 중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으로 떠올랐다.청담동에도 약점은 있다.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가을 한철을 제외하면 미술 애호가를 끌어모을 ‘구심점’이 없다는 것. 삼청동의 국립현대미술관, 한남동의 리움미술관이 1년 내내 미술 애호가들을 불러모으며 인근 갤러리에 낙수 효과를 일으키는 것과 대조적이다.“구심점이 없는 대신 우리끼리 뭉치자.” 국내 중견 화랑인 원앤제이갤러리와 지갤러리, 이유진갤러리, 외국계 화랑인 탕컨템포러리아트 등 청담동 일대 화랑들이 협의체를 설립한 건 이런 취지에서다. 지갤러리 관계자는 “청담동 화랑가 전체의 매력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협의체를 만들었다”며 “간담회를 비롯한 행사를 함께 여는 등 협업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다양한 기획전을 열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포부처럼, 이들 갤러리에서는 지금 특색이 완전히 다른 전시들이 펼쳐지고 있다.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서동욱의 개인전 ‘토성이 온다’에는 사실적인 구상 회화들이 나와 있다. 프랑스 에콜데보자르에서 영상을 공부한 작가답게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연출이 특징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영화의 줄거리와 같은 일종
1961년 미국 뉴욕. 명문대 출신 톰 리플리(앤드루 스콧 분)는 선박업체 사장에게서 뜻밖의 요청을 받는다. 자기 아들이 이탈리아에서 방황하고 있으니 가서 데려와달라는 것. 리플리는 건실한 청년이 아니라 문서 위조에 능한 사기꾼이다. 이탈리아 고급 휴양지로 떠난 그는 선박업체 사장 아들을 만나 대뜸 친한 척을 한다. “나 기억 안 나? 우리 친구잖아.”지난 4일 공개된 넷플릭스 8부작 <리플리: 더 시리즈>의 시작은 낯익다.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 <리플리>(1999)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한 그 톰 리플리의 이야기가 맞다.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소설에서 태어난 이 특별한 사기꾼은, 1960년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이 연기하기도 했다.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볼 이유가 있을까. 심지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스티븐 자일리언은 흑백 화면을 선택했다. 리플리를 연기한 앤드루 스콧은 40대 중반(1976년생)이다. 알랭 들롱이 보여줬던 눈부신 청춘의 느낌이 없다. 넷플릭스의 리플리는 용의주도한 범죄자 그 자체다.건조한 느낌의 흑백 범죄극은 8부작으로 늘어나며 더 세밀해졌다. 1950~1960년대 프랑스 범죄영화, 필름 누아르의 명작들을 떠올리게 한다. 범죄 준비와 수행, 수습 과정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따라가던 <두 번째 숨결>(1966),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9)의 숨 막히는 분위기가 있다.리플리는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에 매혹된다. 폭행,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중에도 명작을 그려냈다는 점 때문일까. 섬뜩할 정도로 생생한 카라바조의 그림들은 드라마의 시공간을 어느새 공유한다. 음영이 뚜렷한 그의 그림들은 리플리의 위기를 해결해주
마에스트로 정명훈(71·사진)은 2016년 도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사상 최초로 명예음악감독이 됐다. 1911년 설립된 도쿄필은 NHK교향악단과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양대 악단이다. 정명훈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단독 공연을 하는 도쿄필을 지휘한다. 다음달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에서 정명훈은 포디엄에 오를 뿐만 아니라 피아노에도 앉는다.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다. 솔리스트로는 독일 명문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동양인 최초 제2바이올린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38)와 2014년 파블로카살스국제첼로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문태국(30)이 함께 오른다.24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이지혜와 문태국은 “피아니스트 정명훈과 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은 꿈 같은 일”이라고 했다. 정명훈은 ‘정트리오’(정명훈 정경화 정명화) 활동을 제외하면 피아니스트로 다른 솔리스트들과 합을 맞추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지혜와 문태국 역시 지휘자 정명훈과의 공연 경험만 있다. 이지혜는 2011년 서울시향 협연자로, 문태국은 2019년과 2023년 원코리아오케스트라 첼로 수석으로 연주했다.문태국은 “지휘자 정명훈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지만 피아노를 칠 때면 굉장히 여리면서도 섬세한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정명훈 선생님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 방향성을 명확하게 전하고 악단을 이끕니다. 그게 지휘자로서 강한 모습이라면, 피아니스트로서는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을 담아내죠. 그 소리는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어요. 선생님과 함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