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가 없다""우리회사엔 맞지 않는다. 도통 회사실정을 모르는
말이다""리스크 있는 일을 왜 하나. 지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피하는게
상책이지""자리에 앉아 볼 틈도 없이 또 회의인가""우리 과장은 부장이나
중역들의 얼굴표정을 읽어가며 야단을 치는 사람이다"
후지쓰가 사내 교육용으로 만든 소책자(제목.대기업병을 몰아내자)엔
이런 표현들이 실려 있다.
"후지쓰맨"하면 맹렬사원으로 정평이 나있다. 퇴근이 가장 늦는
회사원들로도 손꼽힌다. 도전적인 사풍속에 일을 만들고 찾는 "일벌레"
라고도 한다.
관료주의나 대기업병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회사가 후지쓰이다.
그러나 이 회사가 "대기업병 육언집"을 내놓게 된데는 까닭이 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해 보려면 누군가 트집을 잡는 풍조가 고개를 든
때문이다. 트집도 "전례가 없다"는등 "맹랑한"것들이 많다. 인사를 좀
파격적으로 하려해도 "전례가 없다"는 반대에 부닥치고,판매방법을 바꾸려
해도 "전례가 없다"며 주뼛주뼛거리는 사람들이 눈에띄게 늘어나고 있다.
"경영개혁은 이미 물건너간게 아닌가" 전사적 경영개혁을 주관하는
이회사의 "EF-92운동" 사무국이 묘하게 돌아가는 회사의 분위기를
상징해주는 사원들의 말과 행동을 모아 소책자로 발간한 것이다.
이책자를 통해 노리는 목적은 야마모토회장의 말에서 찾을수있다.
"옛날의 "작은 후지쓰"로 돌아가고 싶다. 후지쓰가 대기업으로
커지면서 "우리회사는 걱정이 없다"고 안심하는 사원들도 많다.
조직은 각부문 각계층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어 정보소통이 안된다.
"작은 후지쓰"시절에는 말하면 통했다. 또 도전적 목표를 내걸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분위기를 다시한번 만들어가겠다"
이같은 위기의식을 심으면서 그는 "야만적 사풍"을 강조한다. "나는
야만인에 속한다. 사원시절엔 에어컨도 없었다. 양동이에 샘물을 길어
붓고 그속에 발을 담그면서 야만인처럼 일했다. "이 일은 우리과 일이
아니고 <><>과에서 해야 한다"는 따위의 말은 아예 들어 본적도없다.
생각난 일을 생각한 사람이 하면 그뿐이었다"
조직이 커지고 강해지면 "벽"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다른부서의 업무에
손을 대는것은 고사하고 "입질"도 못하게 된다. 자기업무에 간여하는자에
대해 말한마디 못한다면 "병신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조직은 이같은
생리를 갖는다. 후지쓰는 바로 이런 분위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후지쓰의 사원연수는 대기업병방지를 위한 장치로 운용된다. "웬놈의
연수가 그리도 많은지."작년 봄 대학을 졸업한 아들에게 후지쓰입사를
권유했던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사카가미국장의 말이다.
"후지쓰 사원들은 일을 하러 출근하는 건지,연수를 받으러 회사에 나가는
건지 모른다"는 말도 쉽게 들을수 있다. 신입사원연수 중견사원교육
관리자코스등 연수가 줄을 잇고 있다는 뜻이다.
"연수의 후지쓰"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중견간부사원교육이 유명하다. 이
교육은 리포트작성 논문시험 그리고 중역앞에서 받는 구술시험등 장장
6개월동안 지속된다. 과장으로 승격하려면 여기서 종합평점 70점이상을
받아야 한다. 말이좋아 연수이지 이쯤되면 과장승격고시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보다 한술더 뜬것이 "45세연수". 79년부터 13년간 지속된
이교육은 45세된 직원(화이트칼러)을 사무실과 "격리 수용"하는데 목적이
있다.
하필이면 왜 45세인가. "20년정도 회사에 근무하면 45살이 된다.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나이라고 할수있다. 회사가
아무리 "공부하라,공부하라"외쳐봤자 쇠귀에 경읽기로 끝나기가 쉽다.
게다가 45세는 공부를 할수있는 마지막 기회. 이 나이를 넘기면 공부를
하기엔 너무 늦다. 회사가 "45세연수"를 제도화시킨 이유는 여기에
있다"(소림대우전사장.45세연수 창안자)
45세연수는 시행상에 여러가지 문제가 따르는게 사실이다. 한날 입사를
한 동기생이라도 20년이 지나면 천차만별이된다. 부장이 있는가 하면
과장,심지어는 사원도 있다. 그래서 45세 연수는 대개 3개반으로 나뉜다.
부장에게는 예비경영자 연수를,과장에 대해서는 그에 알맞는 커리큘럼을,
비관리직원에게는 실무지식이나 자기계발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이같은 교육내용은 중요한게 아니다. 관록과 경험으로 버텨보려는
중년층들이 쇼크를 받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3개월간 자리를 비워둘 경우 관리자들은 여간 불안해하는게 아니다.
자기가 없으면 회사업무는 하루도 돌아가지않는다고 믿는게 관리자들이다.
45세연수에 들어간 사람들도 똑같다. 그렇지만 회사는 잘돌아가게
마련이다. "내가 없어도 되는구나"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하게되고
심한 사람은 고독감에 빠져들수도있다. 이렇게되면 나이를 먹어도
자기계발을 게을리 할수가 없다"(후지쓰 교육훈련부).
사원연수에 까지 "관례가 없는""야만적수법"을 동원하고 있다고나 할까.
덕분에 후지쓰는 일본국내에서 IBM을 따돌리고 컴퓨터 정상메이커로
발돋움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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