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정구학.김문권기자]최후의 협상마저 깨진 현대사태는 노사
양측이 "더이상 할말이 없다"고 돌아서 "마주보고 달려오는 열차"처럼
충돌을 피할수 없게 됐다.
노조는 다시 "강경투쟁"을 선언하고 나섰고 그동안 협상의 진행을
관망하던 경찰은 병력을 계속 보강,진압작전을 준비하고있다.
20일오후2시20분께 열린 노사협상장은 전날과는 달리 냉담한 분위기로
일관.
전날에는 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밝히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등
화기애애했으나 이번 협상은 양측이 입장을 정리한 탓인지 악수조차 않고
시작.
보도진들이 "악수자세"를 연출해줄것을 요청하자 마지못해 악수를 한후
전성원사장은 "열심히 협상하겠다",이헌구노조위원장은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간단히 인사.
.협상결렬직후 노조는 이날 근로자들에게 배부한 투쟁속보를 통해
"공권력 투입시 마.창노련 현총련등 전국적으로 연대투쟁을 결의했다"면서
공권력 투입에 대비,결사항전을 촉구.
노조는 또 구 정문에 신나등 위험물을 추가배치하고 5공장내에 있던
방한복 1천4백벌을 농성근로자들에게 나눠주는등 비상체제를 계속 강화.
.회사정문 경비실에는 농성조합원이 외출할 때 맡기고 갔다가 찾아가지
않은 사원증 2백여장이 그대로 있어 농성 이탈자가 있음을 반증.
복면을 쓴 정당방위대원들은 "하루에 2백 3백명씩 집안일로 회사 밖으로
나갔다가 모두 돌아오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신분증은 갈수록 쌓이는
실정.
.이헌구노조위원장이 이동할때는 정당방위대 1백여명으로 구성된
호위대와 무전기를 들고 상황을 지휘하는 지휘자들이 뒤따라 "진중 장군"을
연상케하기도.
이들 호위대는 쇠파이프로 무장한채 이동할때는 오와 열및 발을 맞추고
쇠파이프로 땅을 치면서 길을 트는등 위용을 과시.
.정당방위대 2백여명은 공권력투입에 대비해 도로곳곳에서
화염병투척연습에 돌입.
그러나 화염병(모조)을 처음으로 던져보는 정방대원들이 많아선지
목표물(타이어)에 제대로 맞히지 못하는등 실수연발.
.휴일(19일)에 이어 대체로 조용한 공장분위기가 계속되고있는 가운데
30여명이 본관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기도.
이들은 공권력투입등은 생각도 않는듯 공차기에만 열중,노사분규장이
체육행사장으로 변한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하기도.
.공장 잔디밭곳곳에는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날의 마지막
협상진전을 나름대로 예상해보며 토론에 열중.
이들은 대부분 이번협상도 회사측의 무성의로 틀림없이(?) 결렬될 것으로
내다보고 만약 결렬될 경우 모든 책임은 회사측에 돌아간다고 책임을 전가.
.마지막협상장면을 취재하던 일부기자가 편파보도문제로 노조측에 의해
협상장에서 쫓겨나는 촌극도 발생.
"명촌교폭파"등을 보도한 부산의 K신문과 노조측의 불만을 야기한 사설을
게재한 중앙의 D일보는 취재중 노조 박모부장에 의해 적발(?)돼 협상장
바깥으로 쫓겨나 할수없이 취재를 중단.
.20일 새벽 공권력투입을 예정했던 경찰은 20일까지 노사협상이 열리는
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주말로 투입시기를 연기했으나 최종협상의
결렬로 시기를 앞당길 분위기.
육.해.공 3면을 이용한 "염포작전"으로 불리는 이번 작전의 결행시기는
22,23일새벽이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
이때쯤이면 농성근로자들이 추위와 피로에 못이겨 이탈,잔류자가
1천명선으로 감소할 것이기 때문.
경찰의 투입병력 1만명중 주 야 교대활용 5천명을 현장에 출동시킬 경우
농성자가 공격인원의 3분의 1이 되는 22,23일 새벽이 작전전개에
용이하다는게 경찰의 분석.
.회사측의 공권력투입 요청서가 정식으로 발송된후 이번 진압작전을
진두지휘할 경찰수뇌부가 속속 울산으로 집합.
박수영 경남경찰청장이 이미 도착,사태파악에 나선데 이어 도내
12개경찰서장이 현자주변시찰을 마쳤고 다중범죄진압의 1인자로 알려진
김경식 서울시경찰청 기동단장이 19일 오후3시 울산에 도착.
울산시 중구태화동 R호텔은 38개 객실중 20개를 이들이
사용,경찰지휘본부가 된 느낌.
.울산시 범시민 지역안정대책협의회(회장 이석호 울산상의회장)는 20일
오후2시 태화강 고수부지에서 각 사회단체회원등 3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대자동차 조업정상화 촉구 범시민 궐기대회를 연뒤 가두행진을 하며
호소문 15만여장을 배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