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산맥에서 발원해 칠레수도인 산티아고의 북쪽 외곽을 가로질러
흐르는 마포초강. 시중심에서 볼때 이강 건너편이 파트로나토지역으로
한국교포상점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현지에서 "마포초"라 불리는 이곳에서 지난 두달동안의 분위기는
마포초강의 물빛깔과도 같은 잿빛이었다.
칠레교민사회를 뒤흔든 이번 사태의 파문은 컸다.
칠레정부로부터 출국통지를 받은 교민수는 지난달 25일 현재 70여가구
2백명선에 육박,1천3백여명인 전체 칠레교민의 15%에 달했다. 하지만 이미
출국통지를 받은 이들외에 또다른 영주권없는 교민 70여가구 2백10여명도
1년짜리 체류권이나 영주권을 신청해놓은 상태에서 칠레당국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최악의 경우 칠레교민의 3분의
1가량이 출국대상이 될수도 있었다. 다행히 사건이 표면화된 직후인
지난달초 한국 칠레간 정부차원의 교섭으로 출국통지서 발부가 중단됐다.
칠레정부의 한국교민에 대한 출국조치는 사건이 한국에 알려진 시점인
10월말보다 몇달 앞선 지난 7월부터 시작됐다. 이미 당시에 10여가구
30여명을 30일안으로 칠레를 떠나도록 명령했었다. 이것이 1차 출국조치인
셈이었다. 이어 2차로 10월초부터 지난달말께까지 60여가구 1백60여명이
현지 인터폴로부터 1백20일안으로 떠나라는 출국통지서를 전달받았다.
강제출국은 교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산티아고에 지사를
두고있는 럭키금성 삼성등 한국기업체의 상사원들도 예외가 될수 없는
입장이었다.
수년째 산티아고에서 근무해오고 있던 그들도 교민들과 마찬가지로
1년짜리 체류권을 2번이상 신청할수 없는 칠레법과 이민당국의 통보에 따라
영주권을 신청했다.
하지만 영주권을 신청한지 짧게는 2개월,길게는 1년이 지났으나 승인이
나지 않았다. 칠레법에 34일안에 영주권심사를 끝내고 결과를 신청자에
통보해야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칠레당국으로부터는 연락이 없었다.
따라서 상사원들도 영주권"신청중"이라는,엄밀히 따져 영주권이 없는
처지이다.
그결과 인접국에 대한 출장은 편법을 동원해야만 갈수 있게됐으며
그나마도 여의치 않을때는 출장업무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생겼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특사파견으로 해당교민이 1년짜리 체류권을 보장받는
"선고유예"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후유증은 아직도 완치되지 않은
상태이다.
칠레현지에서 이번 사건이 여론화되기전에는 한국교민들의 존재는 그리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으며 교민사회는 활기찼었다.
그렇지만 사건이 터지자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한국교민들의 거취는
현지인들의 관심거리로 떠올랐으며 칠레인과 접촉하는 한국교민들은
칠레인들로부터 "당신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는게 일상의 다반사가
됐다. 또 교민들은 현지주민들의 무심한 눈길조차 따가운 시선으로
느낄만큼 위축됐다.
이번 사태로 인한 보다 심각한 문제는 남미국가들이 한국인을 보는
시각인것 같다. 칠레로부터 출국명령을 받은 교민 모두가 범법자나
불법체류자인듯이 알려짐으로써 한국인이라면 아예 범법자로 간주하는
왜곡된 한국인상이 심어지는듯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기때문이다.
사건이 터진지 얼마되지 않은 지난달초 칠레에 인접한 나라들을 방문했던
한 상사원은 "한국인 입국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시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입국심사대에서 한국인만을 따로 구분해 심사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이민사상 처음이자 최악의
"무더기추방"사태는 일단 막았으나 진정한 마무리 작업은 이제부터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