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학의 중심조류를 형성하는 케임브리지학파의 창시자 알프레드
마셜이 1885년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교수로 취임하면서 행한 연설내용
가운데 후학들이 즐겨 인용하곤하는 대목이 있다. 경제학도는 "차가운
머리와 따스한 가슴"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경제학이
진리탐구와 동시에 현실문제에 애정을 갖고 해답을 모색하고
제시해야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편 그 말속에는 경제란 원래 냉정한
두뇌로 그 진실과 실체에 접근해야할 대상이란 기본전제가 깔려있다.
마셜의 불만은 현실경제문제에 관해 지나치게 메말랐던 당시 학문세계의
감성이었지,이성으로 진리에 접근하려는 기본자세를 탓한 것은 아니었다.
학문세계와 현실세계가 경제를 보는 시각과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자세에는
차이가 있겠으나 오늘의 경제현실을 보는 우리사회의 시각이 이성보다
감성에 너무 편향된 감이 없지않으며 바로 그점이 보다 큰 경제위기의
실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예상과달리 하반기에 들어서도 무역적자가 줄기는커녕 큰 폭으로
확대되면서 어느날 불쑥 고개를 쳐든 우리사회의 경제위기론은 시일이
경과하면서 증폭되고 가속이 붙어 마침내 한국경제의 현실은 물론
장래에대한 극단적 비관론으로까지 치닫는 인상이다. 비단 경제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와 정치가 안고있는 구조적 결함과 모순으로 미루어
우리나라가 향상할 가망이 좀체로 보이지 않으며 더욱이 내년에 있을
네차례의 선거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완전히 거덜낼 것이라는 우려의
외침이 진동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극단화하여보는 경향이 있으며 실상은 그게 더큰
문제다. 토론이건 혹은 논쟁이건,아니면 또 평범한 일상의 대화이건간에
분위기와 바람에 휩쓸리고 2분법적 사고와 흑백논리의 함정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매사를 균형된 감각과 냉정한
자세로 파악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 떠들썩하게 벌어지고있는 경제위기론,극단적 비관론도 바로 그와같은
경향과 잘못의 연장선상에 있다. 위기의 배경과 원인을 나름대로
극단화하고 극단적으로 단정해버린다. 과소비와 사치,졸부의 폐해를
실상이상으로 극대화하여 바로 그런 것만이 경제를 망치는 주범인듯이
단죄해버린다. 그런가하면 또 임금상승과 인력난 혹은 자금난
부동산투기가 문제의 근원이고 그것만 해결되면 만사형통인것처럼 여긴다.
졸부와 사치는 어느 나라 어느사회고 있게 마련이고 임금과 사람 돈
땅문제도 마찬가지다. 단지 정도문제일 뿐인데,그 정도가 심각하다고해서
그게 모든 문제의 근원인양 극단화하는것은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어떤 현상 또는 어떤 문제를 극단적 시각으로 파악할 경우 무리한 처방이
나오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생긴다. 경제.사회위기를 필요이상
극단적으로 절망할 경우에는 결국 무리수와 극약처방이 나와 사태를
왜곡시키고 쥐를 잡으려다 독을 깨는 어리석은 결과를 빚는다.
극단적인 낙관론,근거없는 낙관론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나친
비관론,위기의식의 극대화 극단화는 삼가야한다. 오늘의 경제위기론은
그것을 극복하자는 것이지 비관하고 좌절하자고 제기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위기를 극복하기위해서는 먼저 문제의 본질과 진실을
냉정하고 균형되게 알고 있어야한다. 극단적 비관논리에만 쏠리지말고
긍정적 희망적 측면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학원가 노사관계가 조용하고
어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것같은 모습은 그런 측면에 속한다고 할것이다.
나아가 고통을 분담하고 인내하겠다는 국민전체 모든 구성원의
"사회적합의"와,위기를 기어이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중요하다.
현안의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어차피 적지않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그것은 모두가 나누어 감당해야할 사회적
비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우리가 결국은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말것이라는 자신감과 희망적 긍정적 자세다. 위기론이 극단적
비관론으로 흐르는 현실을 특히 경계하는 이유도 실은 그것이 초래할
좌절감과 패북의식이야말로 지금까지 우리경제를 이끌어온 에너지의 최대
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희망과 자신감은 우리에게 위기를 극복할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다.
선거를 걱정하고 정치를 나무라고 우리의 낮은 의식수준을 개탄하지만
그런다고 하루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문제를 인식하는것 자체가
해결의 시작이며 참고 노력하면 성취된다. 마셜이 "따스한 가슴"을 주문한
것은 현실문제해결에 학문이 광명을 줄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요망되는 논의가 바로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갈 자신과 희망을
다지는 내용이어야 한다.
정치.경제.사회적 위기는 확실히 심화되고 있다. 사치 범죄 반윤리등이
사회를 어렵게 하고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너무 크게 증폭되어 우리의
극복의지를 좌절시키는 극단적 비관론은 경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