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한 전 북한외교관 고영환씨의 기자회견 일문일답>
-- 귀순경로와 동기는.
콩고대사관 참사로 근무하던 지난3월초 신변의 위협을 느껴 귀순을
결심했습 니다.콩고 인접 국경에서 관리에게 돈을 주고 월경했으며
서울에는 5월초 도착했습 니다.오랫동안 아프리카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사귀어둔 친구가 많았는데 이번 귀순 에는 이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귀순동기는 사회주의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북한의
체제에 회의 를 갖고 있던 데다 지난해 7월 김정일이 40여국의
북한대사관에 국가보위부 무관을 파견,직원들의 사상동향을 감시했는데 이
무관에게 적발돼 신변에 위협을 느꼈기 때 문입니다.
당시 콩고에 파견나와있던 무관은 2달간 나를 따라다니면서 ''돈벌이
한번 크게 해보자''고 제의했으나 이를 거절한 데 앙심을 품은 것 같은데
언젠가 알바니아 사태 를 보도하는 TV를 보면서 무심결에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 냐"고 말한 것을 보고는
나에 대해 ''사상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전문을 평양에 보냈습니다.
이때문에 평양당국이 지난4월8일 열리기로 돼있는 85차 국제의회동맹
회의에 통 역을 맡으라며 한달 앞선 3월2일 소환하는 것을 보고 숙청하려는
것으로 판단,귀순 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북한 외교정책의 방향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습니까.
<>북한은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86년 블라디보스톡 선언을 통해
"신사고 "정책을 채택한 것을 계기로 기본적인 외교정책을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현재 대일수교를 금년 12월말까지 성사시켜
배상금을 받아낸 뒤 경제난을 타개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50억달러
정도는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북한당국은 보고있습니 다.또 독일과의
외교를 강화해 EC등 서방세계의 경제원조를 끌어내는 한편 태국.말
레이시아등 아시아에 대한 외교도 한층 강화하고 있습니다.소련과는 지난해
10월 한 -소 수교를 계기로 점차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며 이때문에 소련
공산당내 보수강경 파와의 사업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김정일은 소련 군부세력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라며 특히
군부내 반 고르비 세력의 쿠데타 가능성을 면밀히 타진한 뒤
측면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려보내 기도 했으며 실패로 끝났지만 최근의
소련 쿠데타에 무척 고무됐을 것입니다.
중국과는 정치적.이념적.사상적 유대관계를 강화하는데 최우선 목표를
두고 있는데 외교관들은 늦어도 내년 상반기중 한-중간에 국교가 수립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영남 외교부장은 지난 87년 과장급 이상 간부를 소집한 뒤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최선을 다하라.양상곤.이붕등 중국내 강경세력과의 개인유대를
강화하라"고 독려한 바 있습니다.
--북한의 개방 전망은.
<>현재의 극심한 경제난과 외부로부터의 거센 개혁바람 때문에 앞으로
5년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부부장 이상 고위 간부들도 모이기만 하면
"중국처럼 개방해야 한다"며 당의 경제정책을 비판할 정도로 북한 경제는
엉망입니다.그러나 개방의 방식은 소련식이 아니고 당이 군부의 우위에
서는 중국식 개방이 될 전망입니다.북한 국내의 정치적 사정등에 따라
개방의 폭은 결정될 것입니다.
--북한의 핵시설에 대해 아는 바가 있습니까.
<>북한은 50년대에 자체 핵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했으며 60년대 중반
박천에 지하핵연구시설을 설치했습니다.핵기술은
프랑스,오스트리아등지에서 들여왔습니다. 외교관들은 북한이 2-3년안에
핵무기를 제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IAEA의 핵 사찰을 받지 않기
위해 북한은 아르헨티나.파키스탄등과 핵사찰을 받지 않도록 하자 는
협의를 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지난 5월 북한이 핵사찰을
받겠다고 한 것은 핵사찰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거세지고 이 문제가
대일수교의 걸림돌이 되고있 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며 실제적으로는
핵사찰을 받기보다는 핵무기 제조능력을 보 유하기 전까지 시간을 벌자는
속셈입니다.
영변외에도 평산에 우라늄 광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의 유엔가입 배경은 무엇입니까.
<>금년 2월까지의 대유엔정책은 주변정세가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으므로 남한이 단독가입하겠다고 하면 내버려둔 뒤 남한측에
분단고착화의 책임을 전가하자는 것이 었습니다.그러나 지난3월 중국의
이붕총리가 평양을 방문한 뒤 유엔동시가입으로 대 서방관계에서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자는 쪽으로 정책을 바꿨습니다.그러나 북한은 유엔에서도
''하나의 조선''정책을 고수해나갈 것입니다.
-- KAL기 폭파사건에 대해서 얘기해 주십시오.
<>87년11월 KAL기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외교부장 김영남과 함께
아프리카등지를 돌아다니며 올림픽 공동개최에 대한 설득작업을 벌였는데
사건 발생당시에는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외유를 마치고 평양에
도착했을 때 국가보위부로부터 앙 골라에 수산대표부 대표로 나가있는
김현희의 아버지 김원철을 즉시 귀환하도록 전 문을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을 보고 KAL기 사건이 북한의 짓이라는 짐작을 하게 됐습니다.
또한 사건발생후 아프리카 과 산하 7개국에 ''KAL기 사건은 조작''
''노동자.농민 의 국가가 노동자가 탄 비행기를 떨어뜨릴 수 있겠는가''라고
주재국 정부에 선전하 고 그래도 증거를 들이대며 자세한 내용을 물어오면
대응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의 전문을 보내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는 확신하게됐습니다.
--남북관계의 전망에 대해서는.
<>북한의 고위간부들은 사회주의 체제하의 통일만을 목표로 하고있으며
남쪽은 대화상대가 안된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사고입니다.현재 진행중인
남북대화는 경제교 류에 그 목표가 있으며 총리회담은 대외과시용일
뿐입니다.93년부터나 성실한 남북 대화가 이뤄질 것입니다.
--김정일에 대한 권력승계시기및 개인적인 평은 어떤지.
<>김정일과는 3-4번 접촉한 적이 있지만 볼 때마다 저렇게 해가지고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외교부 직원들은
프랑스에서 꼬냑 ,노르웨이에서 바다가재,흑해에서
철갑상어알,앙골라에서는 푸른상어 알등을 ''정성 품''이라며 들여와
김정일에게 바치는 게 가장 중요한 일로 치고있습니다.또 전국에 서
얼굴이 예쁜 19-20세의 처녀들을 선발,김정일의 술시중을 들게하고
있습니다.호 랑방탕한 면에서는 김일성의 10배는 될 것입니다.김정일은
주로 새벽 1-2시에 전화 를 걸어 업무지시를 내리는등 주로 새벽에 일하기
때문에 아래사람들이 피곤해 죽을 지경입니다.
3차7개년 계획이 끝나는 93년의 7차 당대회가 권력승계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국내사정과 신뢰도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93년에는 당총비서정도가
될 수 있 을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떻습니까.
<>남대문시장등 여러곳을 둘러보며 풍족한 물자와 자유로운 생활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경제나 기술수준은 선진국 수준이라고 보지만
국민의식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특히 외교관입장에서
총리폭행사건을 보고는 "어떻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나"며 동족으로서
가슴이 아팠습니다.또 식당에서는 손님들이 차려놓은 음식 의 40%만 먹고
버리는 것을 보고 과소비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