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공산당 74년이 끝났다. 강경보수그룹의 쿠데타기도 못지않게
소련사회와 세계에 심대한 영향을 주게될 사태진전이다.
주지하듯이 공산당은 단순한 정파가 아니라 국가통치기구 그자체이기
때문에 소련의 이번 공산당해체는 소련의 정치 경제적 전통치조직과
그기반이 와해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도 정치적 의미에서는 바로 이 공산당의
개혁 개방을 통해 소련사회전체를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국가"로 개조하겠다는 것이었던 만큼 이번의 공산당 해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고르비개혁로선의 파탄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갖게되는 것은 소련이 앞으로 어떻게
이같은 정치혼란을 극복해 내는가이다. 쿠데타의 실패이후 러시아공화국의
옐친이 국면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옐친은
민주화요구라는 시대조류를 타고 산적한 난제들의 해결을 요구하는
"반대입장"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그가 권력을 완전장악한다고 하면
기왕의 난제에 뿌리깊은 공산당조직의 반발이라는 또 하나의 난제가
더해질뿐 이라는 "입장의 역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지난
며칠 고르비.옐친의 권력공유는 이런 선에서 이해되어야 할것이다.
말하자면 고르비와 옐친이 정치 경제적 난제가 산적한 소련사회의 총체적
위기국면이라는 황파에 같은 배를 타게 된 형국이다.
한편 고르바초프도 공산당을 버린다고 선언함으로써 기왕의
페레스트로이카노선도 동시에 포기하면서 그의 정치적장래를 해체된
공산당을 재편한 개혁추구의 새"순수정당"의 설립에 걸게 되었다. 옐친과
협조속에 경쟁이라는 새로운 정당정치가 소련정국의 안정을 끌어낼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다. 소련은 이번에 신연방조약이 체결되면 국호가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에서 소비에트주권공화국연방"으로 바뀌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노동자와 농민 병사의 대표기구라는
소비에트가 갖는 계급적 의미도 공산당자체의 해체와 함께 의미가 없어져
새로운 국호를 다시 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이제
소련은 전혀 새로운 소련으로 탈바꿈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이 "새로운 소련"은 어제 고르바초프의 소연방의회연설에서 시작해서 곧
체결될 것으로 예정되고 있는 신연방조약의 성립,그리고 그후
6개월안에마련될 새 소련헌법과 또 그 헌법규정에 따라 실시될 총선거와
연방대통령선거라는 정치과정을 거쳐야 세계앞에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될것이다.
지난 며칠 분노한 소련민중의 주요타깃은 공산당내 보수그룹에서
공산당자체로 확대되었으나 고르바초프가 공산당해체를 선언하고 옐친과
권력공유라는 잠정적 권력체제를 재빨리 안출함으로써 소련정국은 비교적
안정된 가운데 새로운 정치틀 만들기작업에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세계의 주요한 관심은"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소련"이
아니라 "새로운 얼굴"로 나타날 소련이다. 연방이 아니라 각 공화국이
주권을 가진 국가연합체(confederation)라는 기묘한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15개공화국가운데 10개는 떨어져 나가 독립한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소련의 75%"라는 러시아공화국을 중심으로 대부분이 재결합,여전히 강력한
국제정치실체로 남을수 밖에 없을것 같다. 이것은 내용에서는 전혀
다르지만 내년 정치통합이후의 유럽공동체의 모양과 형식에서 흡사하다.
령토를 울타리로 정치 경제적으로 배타적인 종래의 국가와는 다른 새로운
얼굴의 국가들이 국제정치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셈이다. 마치
서유럽이라는 지역공동체처럼 소련권이 하나의 지역공동체로 등장하리라는
전망이다.
바로 이런 논리에서 지금 전개되고 있는 소연방의 해체와 그이후의 모습이
세계사의 큰 흐름과 일치하고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이론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속단할수는 없다. 쿠데타가 소련개혁경제의 실패에 따른
반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명백한 것처럼 소련역사의 이같은
전개를 방해할 요소는 너무나 많다. 혁명에 가까운 정치적 격변이
경제사정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분명해서 세계의 우려가 높다. 또
개별공화국과 연방정부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서 자국이익의 극대화만
노리는 외교정책을 펴는 나라도 없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소련사태의 새로운 전개는 세계가 새로운
냉전이후시대 안정적인 세계질서를 확보할수 있느냐의 여부를 가늠하는
마지막 고비라고 할수있다. 지난세기 소련혁명의 와중에서 예국간섭이
소련사회주의를 파시스트적인 제국주의국가로 만들어 내는데 일조를
했었다는 역사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