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사히 신문 >
한여름 번쩍뜨이는 뉴스가 모스크바로부터 날라들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실각,연금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우려할만한 사태가 소련에서 전개중이다.
소련이 과거와같은 강권정치체제로 되돌아간다면 충격은 전세계에 미친다.
2차대전후 가까스로 찍은 냉전의 종지부가 되돌아 갈지도 모른다.
새로이 구성된 비상사태국가위원회에는 부코 내무장관 야조프국방장관
크리추코프 KGB의장등 보수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포함돼있다.
"누가 독재자인가,누군가인지는 모르지만 독재체제가 다가오고있다"고
작년말 세바르드나제 전외부장관은 충격적인 연설을 하면서 사임했다.
고르바초프가 스스로 "제2혁명"이라고 부른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은
소련사회에 새로운 부작용을 낳고 실패하고 말았다. 부산물로 경제의
붕괴와 치안의 악화 민족분규등을 초래했다.
야나예프대통령대행은"이번의 조치는 일시적인것이며 개혁의 중단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다고"말하고 있다. 그러나 비상사태결의는 정당이나
대중운동 집회 데모등을 금지하고 있으며 언론은 검열상태에 놓였다.
따라서 개혁의 승계를 외쳐도 방향은 역행임을 부인할수 없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초기에 열광적인 국민의 환영을 받았지만 어느새 완전히
식어버렸다.
부시대통령과 회담한후 고르바초프는 크리미아에서 휴양중이었다. 27년전
"비스탈린화"를 대담하게 추진하다가 권좌에서 밀려난 후르시초프
제1서기의 운명을 연상시킨다.
단순히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생각하는것은 잘못이 될것이다. 당시의
소련사회와 현재는 아주 다르다.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이 늘어나고 있으며 세계가 상호 의존하는
시대인것이다.
고르바초프가 뜻을 둔 소련의 변혁은 현대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프랑스혁명에 필적하는 의의있는 것이다.
좌절이나 반동이 있다해도 개혁의 정신은 이어질것이다.
정권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국내재건을 위해 상호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상호불신으로 나아간다면 소련자신도 불행할 것이다. 또한
세계각국은 소련이 이같은 변동에 소련으로하여금 스스로 고립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 요미우리 신문 >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19일 해임됐다. 야나예프부통령이
대통령대행으로 취임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고르바초프는 실각한
것이다.
탱크가 모스크바시내에 출동하고 군대가 정부시설을 포위하고 있다.
소련지도부의 보수파와 군부가 노린 쿠데타로 보인다.
이같은 정권탈취는 국제사회의 대소불신감을 야기한다.
신정권의 정당성을 의심케하는 극히 유감스런사태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국제정치에의 중대한 영향을 우려한다.
야나예프대통령대행이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경제의
붕괴로부터,국가를,기아로부터 구하고""광범위한 국내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취해진 조치"라고 설명하면서 국제사회의 이해를 구하고있다.
그러나 현재소련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 사회곤란은 국민의 지지에 바탕을
둔 민주적인 방법으로만 극복할수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치된 처방이다.
전권을 장악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면면을 보면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산당보수파지도자나 국방장관 KGB의장 내무장관등으로 점유돼
있다.
신정권은 구국을 위한 비상조치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오히려
고르바초프개혁이 더이상 진척된다면 공산당의 지배체제가 붕괴된다는
위기감이 그들로하여금 정권탈취로 나아가게 한것으로 보인다.
작년말 소련국내에선 쿠데타소문이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 군부의
지지를 얻은 보수파는 일시 고르바초프에 민주화노선을 수정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후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선거에서 압승하는등
급진개혁파가 광범한 지지를 배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고르바초프도
개혁파와 대화에 나서 개혁노선으로 되돌아왔다.
이의 최대성공이 신연방조약이었다.
이조인이 시작되는 20일 하루앞두고 정변이 일어난것은 군.보수파가
어떻게 해서든 신연방조약을 저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서방측으로서는 이번 소련정변은 충격적이다. 국제정치는 향후 상당기간
소련정세에따라 동요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냉전의 종식에서 걸프전을 거쳐 세계는 신질서를 추구하는 단계에
들어서있다.
이번사태에 대해 서방은 공동으로 대처하여 불안요인을 제거해야한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