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사태가 어찌될까? 지금 전세계의 관심과 이목은 온통 그점에 쏠려
있다. 고르비가 집권했던 지난 6년간 세계는 너무나 많은 변화를
목격하고 체험했다. 더뎠지만 긍정적인 변화였다. 냉전이 종식되고
동서간에 군축과 화해,경제를 중심한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이 점차 틀을
잡아가던 참이었다. 그런중에 고르비의 실각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수
없다. 전세계가 놀라고 사태추이에 관심을 집중하고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의 관심은 특히 각별하다. 고르비가 등단하기전은 물론
88서울올림픽이전이었더라면 소련의 권력구조변화에대한 우리의 관심은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것이다. 절실한 이해보다 흥미어린 시각으로 사태의
추이를 보는 방관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지난 3년간 한소관계는 우리에게 북방외교의 기본축이었다.
한소수교와 경제를 비롯한 많은 분야의 급속한 교류와 협력확대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격상시키면서 남북한관계에 변화를 가져왔고 한반도를
세계의 초점으로 만들었다. 특히 남북한은 지난8일의 유엔안보리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동시가입권고결의안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으며 오는 27일
평양에서 있을 제4차남북고위급회담을 한창 준비중이다.
소련사태는 이제 전세계에 그리고 또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 많은 변화를 몰고올게 분명해졌다. 충격의 파장과 변화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소련사태의 추이에 달려있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자신있게 예측할 처지가 못된다. 사태가 극도의 혼미상태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사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것이나에 관해서는 크게 다음
4갈래의 시나리오를 떠올릴수 있다. 첫째 쿠데타가 완전실패로 끝나고
고르비가 다시 복귀하는 경우이다. 옐친등 개혁파지도자와 국민들의
저항,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강도높은 비난성명과 사태를
역전시켜보려는 움직임등으로 미루어 그 가능성을 배제할수는 없으나 퍽
희박하다.
저항이 완강할수록 오히려 두번째의 극단적 시나리오 즉 유혈과 내전
위험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런 사태는 소련은 물론 세계를위해 불행한
일이 될것이며 가능성은 있어도 첫번째 경우와 마찬가지로 희박하다.
소련국민은 오랜 압제를 인내해온 역사적 전통을 소유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결국은 참고 신집권세력을 수용할 공산이 짙다.
나머지 두개의 시나리오는 신군부와 강경보수파의 쿠데타가 일단 성공으로
끝나면서 장차 페레스트로이카이전의 공산당독재로 회귀하는 경우와 개방과
개혁은 계속하되 경제에 국한하고 그 범위와 속도를 대폭 후퇴조정하는
경우로 갈리는 내용이 될것이다. 이 가운데 적중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후자 즉 경제개혁과 개방은 계속하되 그 폭과 시기가 크게 조정되는
내용이다. 고르비가 다시 복귀하는 시나리오를 뺀다면 그나마 가장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사태전개라고 할수 있으나 물론 그역시 어디까지나
가상에 불과하다.
어쨌든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릴수는 없을 것이다. 그말은 소련이
고르비이전으로 돌아갈수 없음은 물론 쿠데타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임을 아울러 함축한다. 쿠데타의 성패여부에 관계없이 소련은
달라질수밖에 없으며 세계는 그 영향을 피할수 없게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한국은 무엇보다 냉정한 입장에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한다. 희망적인 예측이나 극도의 비관적 예측,섣부른 속단이나
과도한 흥분과 동요,그 어느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소련사태의 결말은
오래지않아 보다 확실한 가닥이 잡힐 것이다.
조용하게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여러 갈래의 예상가능한 사태전개에
대비하는 신축적이고 융통성있는 대응책을 정부와 기업이 미리미리
마련해둬야한다. 최악의 사태까지도 일단 상정은 해야하고 우리의 정치
군사 외교 경제 그리고 심지어 문화와 체육의 장래에 닥칠 변화와 영향을
고려한 대응책이어야 한다. 남북한관계와 한반도,동북아정세와 한중관계의
장래,그리고 세계경제와 한소경협에 미칠 영향과 대응책이 특히 중요하다.
한소경협은 당분간 냉각될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재개될것이다.
소련사태로 주가가 폭락하고 달러와 김값 그리고 원유가격이 뛰는등
세계경제가 몸살을 앓고있으나 오래가지는 않을것이며 따라서 큰상처를
입지는 않을것이다.
기업들은 결코 섣부른 결론을 내리거나 행동을 삼가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할것이다. 정부는 한소및 남북한관계에서 특히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국외교 특히 북방외교와
통일외교가 보다 성숙되고 세련된 내용으로 발전하고 북방경협과 남북
경협이 계속 증진되느냐 못하느냐는 바로 이번사태의 현명한
대응여하에 좌우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