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직후인 지난 45년 8월18일 일제 헌병과 경찰에 의해 저질러진
<화태 가미시스가(현 사할린 레오니도보) 한인 학살사건>으로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유족들이 사건발생 46년만인 오는 20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사죄및 1억엔의 위자료청구'' 소송을 동경지방재판소에 낼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이번 소송은 지난달 15일 `제암리 학살사건'' 희생자 23명의
유족들이 동경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낸데 이은 두번째 소송인데다
유가족측이 일본인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직접 법정투쟁을 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가미시스가'' 학살사건으로 숨진 김경백씨(당시 54세)의 둘째딸
경순씨(61.여.서울 영등포구 신길동)등 유가족 3명은 13일 이번 소송에
법률적 지원을 약속한 `사할린동포 법률구조회''(회장 지익표)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 법정에 직접 나가 재판을 통해
일본의 야만적인 행위를 만방에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경순씨는 또 "당시 학살사건에 관련된 일본군이 소련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기록중에 아버지 경백씨의 학살사실이 포함돼있음을 확인했다"며
"소련에서 이 재판기록을 입수한 한 일본인 작가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법정에 증거물로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순씨에 따르면 아버지 경백씨는 지난 39년 여름 부인(박소금씨.당시
47세)과장남 정대씨(당시 19세)등 6남매를 데리고 당시 일본국 화태
가미시스가로 이주한 뒤 한인 노무자 4-5명과 함께 일본군의 감독아래
철로 토목공사를 해가며 생활해왔으나 해방 이틀만인 45년 8월17일
집에서 동네 한인들과 어울려 귀국문제를 논의하던중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 헌병과 경찰 5명에 의해 인근 경찰서 건물로 끌려가 감금됐으며
나중에 다른 한인 17명과 함께 간첩행위자로 몰려 화형당했다는 것이다.
경순씨 가족은 학살당한 아버지와 오빠의 시체를 찾으려 했으나 일본
관헌들이 경찰서를 봉쇄한채 접근을 허용치 않고 총.칼로 위협하는 바람에
발길을 돌렸으며 끝내 아버지와 오빠의 시신을 거두지 못한 채 소련령
포로나이스크와 유즈노 사할린 스크, 일본 시모노세키등을 거쳐 같은 해
가을 귀국했다.
경순씨는 6.26 전쟁직후 서울로 이사한 뒤 결혼해 슬하에 1남을
두었는데 지금까지 이같은 사실을 남편 등 가족들에게는 전혀 알리지도
않은채 몇몇 이산가족단체에 이 학살사건을 알리려 노력해왔으나 번번히
묵살돼왔다고 말했다.
경순씨 가족은 마침내 ''사할린동포 법률구조회''의 도움을 얻어 소송을
결심하게 됐으며, 지변호사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는 20일
동경지방재판소에 소장을 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