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 북쪽15Kw 지점에 2 키로미터제곱의 연구소용 초지가 있습니다.
바스켈로포호연변인 그곳은 경치가 아름다워 여름마다 각급 학생들이
몰려드는 캠프지역입니다. 연구소의 첨단핵심기술을 이전하고 그곳땅과
건물을 한국기업인들의 숙소로 제공하겠습니다" "5천미터제곱 규모의
빈공장과 3백여명의 기술인력을 갖고있습니다. 한국의 기술이 필요해요.
한국기업과의 합작을 원합니다" 한국기술개발(KTDC)의 대소기술협력사절단
(단장 김창달KTDC사장)15명이 이달초 1주일간 모스크바의 레닌그라드를
찾았을때 그곳 연구소의 지배인(소장)들은 이같이 한국측과의 기술협력과
합작을 희망했다.
그들은 기술대가나 임대료로 신발 스웨터등 생필품을 꼽았다. 초라할
정도로 검소한 차림의 연구소소장들은 사절단이 떠나기전 뭔가 확약을 꼭
받아내야한다는듯 절박한 표정이었다.
몇몇 연구소관계자들은 당장이라도 현장을 안내하겠다며 기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들은 형식적인 환영이 아니라 소탈하고 따듯한 열성으로
한국인들을 반겼다.
한국사절단을 맞는 정부기관이나 당고위층의 환대와 열의도 뜨거웠다.
연방정부의 블라디슬라프 소콜로프공업부차관은 산하 16개연구소장
공장지배인(공장장)과 한국사절단의 연석회의를 소연방전국의료기기연구공사
(VNIMP)회의실에서 주재했다. 양측은 이날 섭씨34도의 이상난동속에서
땀을 흘려가며 5시간이 넘는 상담을 가졌다.
벤처기업대표들인 한국측이 자사소개와 필요한 기술내용을 소개했고
소련측이 보유기술,첨단개발품,개발중인 기술 등을 밝히는 순서로
진행됐다. 협력가능한 동종사업의 파트너가 선정되면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하는 개별실무상담이 이어졌다. 소콜로프차관은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곳저곳의 개별팀을 찾아다니며 영어통역을 떠맡는 열성을 보였다.
레닌의 초상화가 중앙단상위에 높다랗게 걸린 레닌그라드시청회의실에서의
한소기업인회합은 3일전 모스크바때와는 달리 깍듯한 격식을 갖춘
공식모임이었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세르바코프 레닌그라드부시장은 현지의 지역적 전략적
중장기경제발전계획을 자세히 설명한뒤 한국기업들이 진출하면 여러가지
특혜를 누릴수 있다는 말을 잊지않았다. 그는 그러나 첨단의료장비
약제등을 생산하고있는 신약개발성과도 있긴하나 항생제 비타민등 부족한
기초약품들이 너무 많고 신약과 의료장비의 상품화를 꾀하지못하는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기업의 개인화가 적지않은 문제점을 안고있고 또 부작용이 크나 이것이
옳은길이어서 시장경제체제를 계속 밀고 나갈것이라며 그는 한국기업의
협력을 정중하게 요청했다.
세계최첨단의 기초 항공우주 군사기술을 갖고있는 소련은 민생
상업화기술이 뒤져 전국이 마치 열병을 앓는듯 호된 시련을 겪고있었다.
레닌그라드에서 만난 60여명의 연구소장과 공장장들은 지난 70여년의
과학기술성과를 실생활에 적용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상업화기술은 커녕 원가개념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말했다.
통제경제 계획경제에 길들여진 이들 연구소장과 연구소측이 환경변화에
밀려 이제 돈벌이에 골몰하고있다.
소련의 연구소는 과학원산하 5백여개,연방정부의 관계부처(부)와
공화국소속 4천여개,기타를 합쳐 줄잡아 5천여개소로 헤아려지고 있다.
여기에서 일하는 과학자 기술자가 1백50만명,기능공 보조원등을 더하면
4백50만 5백만명으로 추산되고있다.
연방정부 각부에 소속된 연구소의 경우 거의 대부분 공장을 갖고있어
적은곳이 몇천명,크고 중요하다는 연구소라면 종사원 10만명을 넘기는곳이
적지않다. 경제규모를 무시한 대식구집단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이후 연방정부는 이들에게 독립채산제를 권장하고있다.
예산지원도 해마다 줄이고있다.
"지난해엔 89년보다 40%,올해는 작년수준보다 10 20%가 준것같다"고 한
연구소관계자는 지적한뒤 연구소의 자체노력과 소장의 능력이나 재량으로
돈을 벌어 그몫을 메워야한다고 셜명했다.
그러나 그들에겐 돈벌이가 결코 쉬운일이 아닌듯했다.
소련의 연구소장들은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성과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있었다. 그러나 경쟁상대인 동종분야의 서방기술이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묻자 대부분이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
"자동차용 소형엔진을 세계최초로 개발했으나 전세계수요도,가격도,파
는방법도몰라 어떻게 해야할지 답답할뿐입니다"모스크바근교에 중급규모의
연구소를 운영한다는 한소장은 상업화기술에 앞서 경험과 노하우가 없고
응용분야도 서툴다고 실토했다. 말처럼 되지않고 애쓰는 것만큼 돈이
벌리지않아 한국에서 들여올 기술이 바로 이런것들이라고 말했다.
사업성과가 신통치않은 연구소장들의 고민은 더욱 큰듯했다.
페레스트로이카이후 과학원산하 연구소만 이미 40여개소가 문을
닫은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곳곳에서 감원바람도 불고있다.
"모스크바의 한연구소는 최근 7백여명의 직원중 1백여명을 감원했습니다.
그곳 소장은 요즘도 엔지니어급 직원에게 기능공으로 한두직급내려
일하거나 그것이 싫다면 딴직장을 찾으라고 설득하고있습니다"
군수업체에서 근무한다고 자신을 밝힌 이 관계자는 연구소의 살림형편을
이같이 전한뒤 먹고 살자니 한국업체에도 손을 내밀수밖에 없지않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사절단과의 상담과정에서 많은 소련인들은 단순한 기술이전보다
현지합작사업이나 현물거래방식을 제시했다. 기술판매대가로 달러를 벌
경우 연방정부와 공화국이 재정보전을위해 80-90%를 떼어가 연구소에
떨어지는것이라야 고작 10-20%뿐인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살림에 아무런 보탬이 안된다. 그들은 고용을 늘리고 특정생필품이나마
손쉽게 구할수있는길을 찾고있는듯했다.
한국사절단은 방소기간중 기술협력상담26건,과학자 기술자방한초청
8건,합작상담 4건등의 실적을 올렸다. 기업연륜이 짧고 중소규모형태의
벤처기업들로선 대단한 성과였다.
김창달단장은 소련사회가 연방정부와 공화국간의 갈등,피폐한 경제,침체된
국민의식등 많은 어려움을 안고있으나 우리를 이처럼 반기는 요즘이
기술협력의 적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2-3년뒤 소련사회가 점차 정돈돼가면
기술얻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것이라며 이나라 기술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있는 이웃 핀란드 영국 미국등 선진국들의 기업과 단체들이
소련기술의 기업화작업에 나서 이미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있다고 전했다.
"오는12월2일부터 8일까지 모스크바의 코스모스호텔에서
91국제컨버션전시회가 열립니다. 과학기술위원회 연방정부의 3개부
모스크바시상의 UNIDO(유엔공업개발기구)가 공동주최하는 이전시회에선
항공우주 기계 엔지니어링플랜트 엔진 전자 의료분야등의 최첨단기술이
선보입니다. 전시회명칭이 말해주듯 각국과의 협력이 주요목적입니다.
기술을 사가십시오. 한국업체에겐 언제나 최우선권을 줄것입니다"
레오니드 소마로코프UNIDO산업개발담당부총재의 이말처럼 그 큰덩치를
추스르지못해 중병을 앓고있는 소련,소련인들은 아직은 한국인을 따듯이
맞아들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