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양심은 메마르고 룰(규칙)은 없다.
낮에봐도 밤에봐도 양심은 보이질 않는다.
정치하는 사람을 높은 사람이라고 부른다면 그를 하나 하나의 얼굴에
양심이 엿보이고, 그들이 하는 언동에 룰이 있음직한데 그렇지가 않다.
기업가나 경영자도 남의 위에 서있으니 높은 사람들인데 역시 양심은
엷고 행동의 룰은 없어 보인다.
양심이란 말 꺼내는 것 부터가 어리석음으로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고
규칙 운운하다간 눈흘김정도를 지나 따귀 얻어맞지 않는걸 요행으로
고마워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한마디로 양심의 마비요 질서의 도치다.
순리아닌 역리요, 먹이사슬의 정글법칙-약육강식이다.
아니 그만도 못하다.
정글세계에선 태초부터 양심은 개입될 소지조차 없어 왔다.
오히려 그것이 신의 섭리답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한 인간세계의 법칙만이 유독 양심을 기초로 한다.
약속에는 그것을 위반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그것이 도덕이다.
그런 도덕 가운데 최소한의 요구는 양심의 가책에만 맡길 수 없어
강제력으로 제재를 가하기로 이중약속을 한 것이 법이다.
그러나 그 제재력은 소수권력자에게만 있다.
한 사람의 도둑을 열사람이 못지킨다.
그래서 법망엔 구멍이 뚫려있게 마련이다.
법은 만능일수 없는 원천적 약점을 갖는 셈이다.
인간사회가 발달할수록 온통 법으로 범벅을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오히려 사회가 어지러워지는 까닭은 바로 구멍 뚫린
법망만 과신하는 때문이다.
우리사회도 툭하면 법이다.
별의별 법이 다 나온다.
그런데도 비리와 범죄는 격증한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원인은 단 한가지, 양심의 위력을 얕잡아보고 비웃기 때문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양심의 망에는 구멍이 없다.
코흘리개이거나 실성한 사람이 아니면 어느 인간에게나 양심은 있다.
거기에 가책되는 짓을 하고 괴로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
바로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괴로움이 억지력-자제력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일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교육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교육은 양심을 더욱 투명하게 닦아준다.
하지만 그걸로 족하진 않다.
더욱 무서운 것은 동류의식이다.
남들 다하는 나라고 성인인가 하는 자기변명, 더 나아가면 나혼자
중뿔나게 잘하는건 동류에 대한 배신이라고까지 믿게 되는 심리가
작용한다.
이건 추리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아주 팽배해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우리 자신들의 주변을 잠시 돌아보면 된다.
공직자가 됐건 상인이 됐건, 주부가 됐건 학생이 됐건, 자기변명과
동류의식이 얼마나 끈끈하게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는지 그야말로
양심껏 반성해보면 안다.
행정관이 정말로 양심이 명하는대로 공무를 처리한다고 할 수 있는가.
기업과 상인이 속임없이 가격과 품질을 말하는가.
경영자가 회계를 세무관이나 노조원에게 백프로 알려주는가.
주부가 사재기를 안하며 학생이 양식의 명대로 데모하고 시험보는가.
물론 아들은 최지은 아비를 숨겨주는게 의라고 했듯이 선의의 거짓은
용납되게 마련이다.
그것이 오히려 양심일지 모르나 다만 그건 정도문제다.
그런데 그 한계가 모호해지고 한없이 넓어져, 집단이기주의가 급격히
확산일로에 있는데에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맹점이 있다.
그곳에 자기함리화-동류의식이 작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위와 금력이
자신보다 우위인 자에 대한 "네탓이다''라는 책임전가를 거쳐 증오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이 마비되면 게임의 규칙(the rule of game)은 통용될 수 없다.
뒤집어 모든 게임은 규칙있는 경기(the game of rule)가 아니라 엉터리
경기가 될뿐이다.
러프속에서 몇번을 헛쳤는지를 본인이 속이려 들면 골프는 이미 신사의
게임이 아니다.
어디 스포츠뿐인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저단사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정치가 이 지경이라고 장탄식이 나온지 오래지만 근본적으로는 후보자는
말할것 없고, 많은 유권자 스스로가 제양심을 속이는데 원인이 있다.
경제 산업도 한가지다.
경영자와 종업원이 양심을 바르게 하면 노사분규는 괄목하게 줄고
생산성은 일본을 절반이상은 따라갈 것이다.
여기서 어려움은 누가 먼저 양심껏 룰을 지키는가 하는 뒤차례 다툼에
있다.
궂은 일엔 앞다툼이 아니라 뒷자리 다툼이다.
여기서야 말로 "매도 먼저 맞아야 덜 아프다"가 제격이다.
어느편이든 한쪽이 앞장서 룰을 지켠 상대도 오래는 못 버틴다.
그때부터 "게임 오브 룰"은 성립한다.
새해벽두에 지자제 선거가 우선 불을 뿜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행사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인 총체역량의 실험장이다.
그걸 산뜻하게 치러낼 수 있다면 우리는 민주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사회도, 그리고 문화도 몇단 도약을 해낼 수 있는 장래성 있는 일종이다.
반대로 지난 몇차례의 보궐선거처럼 아무리 공명을 다짐해도 새까만
거짓부렁으로 여야 없이 과열을 하고 머리끄덩이 맞잡아 이전투구를
한다치면 이 나라의 앞날은 먹구름이다.
땅에 닿을만큼 떨어진 산업경쟁력을 다시 끌어 올리는 일, 아사리판이
된 사회기풍을 진작시키는 일, 종국엔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원동력이 어디
멀고 복잡한데서 나오는게 아니다.
바로 우리들 개개인의 가슴속에 균재해 있다.
네가 먼저라고 미루지 말고 되도록이면 높은데, 풍족한데서부터 아주
조금씩 양심을 살려가면 이 엉킨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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