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가 다 그렇지만 껍데기를 보고 만물의 진가를 판단함은 잘못이다.
속에 들어있는 뼈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역사적인 남북총리의 첫번째 회담에 대해서도 그렇다.
합의사항이 없었다고 해서 실망하는 태도는 경솔하다.
오히려 그 내면에 흐른 저류는 낙망보다 희망을 안게해주었다.
이번 4일간의 여러차례 쌍방 발언에서 우리가 가장 의미있게
경청해야 할 대목은 5일 본회담에서 한 연형묵 북한총리의
머릿말이다.
그는 말하기를 "북측은 남측에서 이른바 자유의 바람을 불어
넣어 승공통일을 하려한다고 생각하고...남측은 북측이 남침이나
적화전략을 꾀하고 있다고 서로 불신하고 있다"고 또박또박 읽어 내렸다.
또 말하기를 "조국통일 문제는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우는 문제가
아니고..."라고 하였다.
긴 설명이 필요없다.
남측의 우려도 그 속에서 있는 그대로 설명되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부분은 북의 심중을 처음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종전의 태도와 상반된 최초의 솔직한 고백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소련을 필두로 한 공산권의 변화, 특히 동독의 서독으로의 흡수
통합에서 느낀 본능적 위기심이 요령있게 표출돼 있다.
이러한 전제위에 선다면 애초부터 남북총리회담의 조속한 성사를 바라는
자체가 성급한 태도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오히려 이번 서울회담이 무슨 트집으로든 북에 의해 결렬되지 않고
적십자회담 재개와 UN가입 검토의 여운을 남겼으며, 더구나 평양 제2차회담을
약속한 것만으로도 대성공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표피적인 것 외에 북측이 실질적으로 내심 바라는 분야는
경제교류라 본다.
왜냐하면 북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문을 닫아놓고 견딜수 있는 정도겠지만 개방을 하기에는
너무 모자라는 수준이다.
근년 개방준비를 한다고 평양등 몇군데에 지나치게 물자와 노동력을 집중
투입하다 보니까 도농격차는 더욱 우심해졌을 것이다.
이미 그런 중좌가 여러각도에서 엿보인다.
그런데 이 경제교류에 남측은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철이 나야한다.
이제 달포지나면 평양회담이 열린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서울회담을 평가한다면서 당국자나 언론이 너무 설쳐대면
평양회담에도 나쁜 영향이 틀림없이 미친다.
아직 미지수지만 노태우대통령과 연총리의 단독대좌는 의외의
큰길을 터놓는 계기가 될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2차회담으로 모든게 성취되리라고 서둘러선 실패하기 쉽다.
세번 여섯번...꾸준히 이어가며 분과회의를 운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소걸음이 빠르다"는 속담을 되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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