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로시마서 귀국중 사망한 사람 가족 중심으로 ***
일제징용으로 히로시마 미쓰비시중공업에서 혹사당하다 원폭으로
사망했거나 해방을 맞아 귀국하던 도중 풍랑에 휩쓸려 수중고혼이
된 한국인 유족들이 미쓰비시사를 상대로 보상청구소송등 법정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 4일 유족들 기자회견통해 공식으로 밝혀 ***
''일본광도미쓰비시중공업한국인피폭자침몰유족회''(회장 노장수)는 4일
서울종로 구연지동기독교회관에서 회원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갖고
일제때 히로시마 미쓰비시중공업에 징용됐던 한인들의 명단공개및
생사확인,사망자 유해송환등을 미쓰비시사에 강력히 촉구했다.
*** 미쓰비시징용 한인명단공개/보상금 요구 ***
이들은 또 당시 미쓰비시사가 징용자들의 임금을 대부분 지급하지
않았다고 지적,체불노임 지급과 유족들에 대한 원호대책 마련및 보상금
지급등을 요구하고 미쓰 비시측이 이를 외면할 경우 올해안에 소송을
내기로 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법정투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유족들은
원폭피해를 입고 지난 1945년9월16일 일본구주 도하다(호전)항에서
귀국선을 타고 고국에 돌아 가던중 태풍으로 집단 몰사한 것으로 확인된
징용자 2백46명의 국내가족들.
이들은 지난74년4월 유족회를 구성,그동안 징용자명단공개, 생사
확인등을 줄기차게 요구해왔으나 미쓰비시측이 이를 철저히 외면하는등
아무런 성의도 보이지 않음에 따라 최후방편으로 이날 임시총회를 갖고
법정투쟁을 결의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인피폭자침몰유족회는 이를위해 지금까지 미쓰비시 징용자귀국선
침몰사건을 조사해온 무네도시. 심천종준)등 일본민간단체들과 함께
변호인선임등 재판절차를 협의,금년내에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유족회의 이상문간사는"미쓰비시 징용침몰자들의 경우 지난65년
한일협정체결에 따른 청구권보상에서도 제외됐다"면서 "변호인들과
협의해야 겠지만 당시 보상액등 을 감안,1인당 3억원씩은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일서 귀국선 탄 한인익사체 도처서 발견 ***
유족들에 따르면 당시 히로시마미쓰비시중공업에는 주로
서울.경기지역에서 끌 려간 3천여명의 한인노무자들이 해방후 꼭 한달만인
9월15일에야 페허로 변해버린 히로시마역에 집결한뒤 도하다항등에서
수십척의 배에 나뉘어 귀국길에 올랐으나 풍 랑으로 또는 바다에 깔려있던
기뢰등에 맞아 침몰,1천명이상이 수중고혼이 됐다는 것.
그러나 한인징용자들의 이같은 참극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것은
2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지난 73년부터였다.
당시 미쓰비시중공업지도원으로 노성옥씨 (당시22세.노장수
유족회회장의 친동생 )등 자신이 데리고 있었던 2백46명의 한인징용자들을
히로시마역에서 배웅했던 후카 가와씨가 노씨등 전원이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의 소재를 끈질기게 추적 하던 끝에 지난 73년 노씨등이
탄 귀국선이 도하다항에서 출항한 후 풍랑으로 침몰 된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후카가와씨는 당시 백방으로 수소문하던끝에 노씨등이 규슈
도하다항부근에서 낡아빠진 5백톤급목선을 탔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며 45년
9월16일 노씨등이 귀국길에 올랐던 바로 그날 규슈서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진데 이어 이튿날에는 최대풍속 37.1 m의 초특급 태풍이 규수와
대한해협일대를 강타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이 태풍으로 도하다항일대에서 유실된 선박이 무려 2백20척에
이르며 규슈 , 대마도,이키(일기)섬등지의 해안곳곳에 수많은 한인익사체가
떠밀려와 현지주민들이 매장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노씨등이 탄 배가 태풍으로 침몰한 것으로 단정한 후카가와씨는 지난
73년10월 규슈와 대마도중간에 위치한 이키섬 현지를 직접 방문,한
주민으로부터 패전직후 폭 풍이 세차게 몰아친후 2백여구의 시체가
바닷가에 밀려와 주민들이 한곳에 모아 매 장한뒤 한국인 위령비까지
세웠다는 증언을 들었다.
당시 주민들이 묻었던 시체가 노씨등이라고 확신한 그는 경북김천에
살고 있는 노씨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이를 계기로 유족회를
결성하면서 미쓰비시징 용피폭자들의 비극은 28년만에 비로소 그 베일이
벗겨졌다.
그후 76년 9월에는 이키섬에서 한국인유해발굴작업이 벌어져 86구의
유해가 일본인들의 손으로 화장된 뒤 현재 그 유골은 히로시마
서본원사에 안치된 채 국내송 환을 기다리고 있으며 지난 83,84년 45구의
유해가 추가로 발굴됐다.
유족회총회참석차 서울에 온 후카가와씨는 "그동안의 조사결과
6백여명의 한인 이 이키섬,대마도,기타규슈등지에 묻혀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며"그 한예로 실제 이 키섬사무소에서 3백여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두차례에 걸쳐 미쓰비시사에 보상공개질문장을 보낸 그는
또 "미쓰비시측이 징용자명단공개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사망자들에 대해서 도 미쓰비시징용자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고
발뺌하고 있다"면서"이같은 미쓰 비시측의 무성의한 처사를 각성시키기
위해서는 소송을 정식으로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후카가와씨는 미쓰비시측의 명단은폐에도 불구 그동안 3천여명의
노무자가운데 2백여명의 명부를 입수했으며 유해송환,보상,위령비건립을
둘러싼 교섭과정에서 미 쓰비시측이 징용자들의 노임 대부분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설명했 다.
한편 유족회 이간사는 "미쓰비시측이 유해송환및 보상요구에 대해
이키섬등지에 서 발견된 유해는 한국동란때 숨진 것이라고 억지주장을
늘어놓을 정도로 책임을 회 피하고 있다"면서 "한마디로 그들은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이 혹사를 당하다 일 부는 원폭으로 사망하고 일부는
노임도 제대로 받지못한 채 귀국도중 몰사했는데도 그같은 사실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분개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