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단위의 장기목표로나 상정되어 오던 남북통일 논의가 갑자기 손안에
들어온 단연차 사업인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더구나 고위급회담의 준비접촉이 재개된데 이어 7.20 민족대교류선언이
노태우대통령에 의해 발표된 요즈음 통일은 마치 시간문제인 듯한 성급한
기대마저 급작히 퍼져가고 있다.
이것은 물론 독일의 통일이 세계인의 부정적 공감을 뒤엎고 너무나도
순조롭게 급진전되는데서 자극된 민족적 자긍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7.4공동성명 이후의 실험적 교류를 유일의 자산으로 가진 남북한이 그러한
양독의 접근과정을 있는 그대로 모방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것은 자기비하가 아니다.
엄연한 경험적 사실에 근거하여 겸허가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위치설정으로 출발해야만 남북당국이 내놓은 일련의 제의나 선언이
한낱 정치선전이라는 비난을 모면할 수 있다.
23일 통일원이 내놓은 대응책에는 조그마치도 흠을 찾을 수 없다.
오는 26일 서울의 범민족대회에 즈음하여 북이 제시한 (1)북측 해외인사의
참가 (2) 8.15이전의 방북희망자 월경 (3)판문점의 북한주최 범민족대회에
대한 전민련등 남한인의 참가 (4) 백두산-한라산, 한라산-백두산간의 행진
허용요구가 몽땅 받아들여졌으므로 더이상 트집잡힐 점이 없는 것이다.
국방부의 보완책도 무척 합리적이다.
휴전선 콘크리트장벽의 공동조사라는 북측 제의를 정면으로 수용하여 양측
군사요원 3명씩의 27일 회의개최를 구체적으로 제의했다.
조금이라도 교류의사가 있다면 북측은 이를 수락하는 것 이외에 대안이
없으리라고 본다.
법무부의 교류촉진을 위한 쌍방 법제도개선 토의제의에서도 외견상으로는
통일원이나 국방부의 보완책과 똑같이 논리상 하등의 하자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깊은 본질의 문제가 놓여있다.
이 부분이야말로 민족교류이전의 남북대화진행, 나아가 통일의 성취를
위하여 가장 깊이 흐르고 있는 핵심문제를 담고 있다.
마치 국가보안법만 폐기되면 교류장애가 모두 풀릴듯이 말해지는 시각들도
이러한 진실을 바로 투시하지 못한 굴절된 시각임을 우리는 언뜻 간과하기
쉬운것이다.
특히 88년 7.7선언이후 문목사 서의원 임양등 밀입북사건의 접종을 계기로
표면에 노출된 것은 남한의 반공관계 법체계였으며 그것이 언필칭 남북접근의
장애요인인양 북의 여론선동이 따랐고 그 논리가 쉽사리 국내에서도 상당한
호응과 동조를 일으키기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상치되는 극단적 이데올로기아래 내전을 겪으면서
45년간 경화일변도로 대립을 상승시킨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법제와 제도로 현실화된다.
기본법인 헌법에서부터 남북의 모든 공사법체계가 몽땅 극단의 배치관계로
대조를 이룬다.
그 가운데 북의 안전관계형사법과 남의 보안법등은 이질적제도의 빙산의
일각일 따름이다.
더구나 북에선 공개된 의회입법 아닌 비밀법제를 허용하고 있는만큼
반이데올로기, 반정부적 정치범에 대한 제재법률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운영된다.
그에 비하여 남의 법제도는 최소한 공개제도로, 비록 아무리 악법이라도
법전에 공개되지 않은 비밀법령이라고는 존재할수조차 없다.
이런 현실에서 노출된 남의 보안법을 놓고 마치 남북한 통틀어 유일의
반통일적 법률인 것처럼 내외적으로 선전되며 거기에 남의 정당, 정치인까지
동조하여 온다는 현실은 당략에 눈이 어두운 한심스런 작태였다고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실정법체계를 남북상호간 서로 시비하고 그 철폐를 대화교류의 전제
조건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본말의 진도이며 무책임한 인기전술이다.
다시말해 통일과정의 후반쯤 가지 않고는 남북 어느쪽도 현행 실정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만 대화의 진전에 선후하여 극서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초법적인
최고차원의 합의는 쌍반간에 모색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추구되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남북법무실무자의 회동은 그 준비를 위한 제1보로 소망스런
방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