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2차대전중 군인/군속으로 강제로 끌어왔던 한국인 강제징병자
명부의 일부가 후생성 지하창고에 보관괘 있음이 밝혀졌다고 아사히 신문이
5일 보도했다.
*** 아사히신문 보도, 군인/군속 5만명분 ***
명부에는 입대날자와 부대명, 계급, 전속부대 등의 경력과 함께 사망
또는 도주여부가 상세히 기록돼 있으며 모두 1백10권에 달하는데 권당
3백-6백명씩이 수록돼 있어 명부에 실린 인원만도 5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한국정부를 비롯 희생자 유족회등 관계기관의
거듭되는 징병/징용자명부 공개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만을 수록한
군인명부는 없다"고 버텨왔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들 명부는 2차대전 직후 구일본군이 작성, 전후에
설치됐던 복원성을 거쳐 47년 후생성에 인계된 것으로 45년 1월1일 현재
"외지"부대에 배치돼 전투에 참가했던 한국인 육군 사병들의 창씨개명한
이름이 부대별로 적혀 있으며 아들 또는 남편이 징병당하는 바람에 고국에서
빈집을 지키게 된 사람의 이름도 기록돼 있다.
명부는 표지에 "남선"등의 지역 구분이 돼 있으며 빈집을 지키게 된
사람을 뜻하는 "유수명적"등의 제목이 쓰여있다.
일본은 2차대전중 일본 후생성의 공식조사로도 한국인 24만2천명을 강제
징병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본정부는 지금도 한국인 유족으로부터 "사망통지를 받지 못했다"는 등의
문의가 오면 이 명부를 토대로 사망통지서를 발행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 일제때 학도병 정기영씨 88년 확인 ***
강제징병자 명부의 존재는 1944년 1울20일 일제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던
한국인들의 모임인 "1.20 동지회"의 정기영 간사가 지난 88년 학도병 동원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후생성을 방문했을대 담당자가 창고에서 이 명부를
들고오는 바람에 확인된 바 있으나 일본은 당시 학도병 명부만을 손으로
베껴쓰도록 허가했으며 그후 금년 4월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 대표가
후생성을 방문, 명단 공개를 요청했을 때도 "한국인만을 따로 수록한 명부는
없다"며 공개를 거부했었다.
한편 1.20 동지회 간사인 정기영씨는 이날 후생성 명부에서 베껴쓴
학도병 1천5백명의 명부를 공개하면서 명부에는 4천4백명의 학도병 이름이
기재돼 있었으나 담당자가 복사를 금하고 손으로 베껴쓰도록 하는 바람에
1천5백명밖에 옮겨 적지 못했다고 밝히고 "양심에 따라 명부를 공개한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일본 후생성 당국은 정씨가 학도병 명부를 공개하고 5만여명에
달하는 강제징병자 명부가 창고에 보관돼 있음이 일본 언론에 의해
보도됐음에도 불구, "문제의 명부는 외지부대에 국한된 불완전한 것이고
프라이버시의 문제도 있기때문에 공개할수 없었다"면서 "앞으로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