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오르던 내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한해는 다 가고말아/삼백예순날
하냥 섭해 우옵니다" 김영랑의 시속에서 지고만 모란과도 같이
애상만 남기고 한국 축구는 월드컵 16강 진출경쟁에서 거의 완벽하게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아군의 일패도지였다.
패자는 말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망에찬 애상의 침묵보다 준엄한 과학의 말은 오히려
있어야 겠다.
대부분의 패배는 개운찮은 원인을 그 배후에 가지고 있다.
여기어 우리 정치, 우리 경제, 우리문화가 패배할 것인지
승리할 것인지, 패배한다면 어째서 패배할 것인지에 관련된
조건 몇가지를 간추려 본다면, 한가지 씁쓸한 경험이
다른일의 거울 구실을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려는 과학이다.
첫째 과학은 실력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영국의 권위있는 축구주간지 "매치"는 컴퓨터분석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이 불가능 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카매룬이 아르헨티나를 물리치자 이것을 "이변"이라고
여긴 축구인들과 국내 일반 팬들은 한국팀에도 행운의 이변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나아가서 이번 월드컵 대회는 이변이 휩쓸어서 오히려 약한
팀이 강한 팀을 이기게 되어 있다는듯한 투의
요행심리마저 단순한 익살을 넘어 정장을 하고 나돌기까지 하였다.
실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는 것은 패배주의다.
실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것을 냉정히 인정하고 실력을
더 쌓아야 겠다고 각오하는 것이야 말로 과학적인 승리주의이다.
요즘 나도는 "국운호전론" 은 그 자체가 성취를 향한 결심이라면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국운호전론이 소극적인 요행심리의 허수아비 노릇으로
빠져드는 경향을 보게되는 것은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실력과 덕성이 있는 지도자가 없음을 한탄하는
발성을 한다.
지도자라는 것도 다름 아닌 "내"가 모여서 형성되는 "우리"속에서 나온다.
"내"가 요행심리의 미신과 게으름과 질투속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해서 "우리"가운데 덕성과 지혜를 갖춘 지도자가 나오겠는가.
대립적이거나 차별적이거나 배타적인 국가주의가 아니라 내 민족문화,
내가 만드는 민주주의, 내나라의 경제적 번영을 위한 국가주의가 필요하다.
모든 잘못된 것, 길바닥에 버려지는 쓰레기, 혼잡한 교통질서, 물가상승,
과소비를 모두 "내탓이오"라고 받아들이고 "우리나라의 보람"을 위하여
과학하고, 참을성 있고, 개방된 국민이 되자는 것이 국가주의다.
우리나라는 요즘 패배의 길로 들어서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걱정을
자아낸다.
다 함께 승리를 생각하자.
승리의 표준은 객관적이다.
세계에서 일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승리의 길로 들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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