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조그만 문제들을 껴안고 아웅다둥 하는 사이에도 지구의 회전은
멈추지 않는다.
멈추기는 커녕 24시간에 두세바퀴의 자전, 1년에 서너바퀴의 공전을
하는 양으로 덤핑돌아가고 있는것이 현대 지구촌의 양상이다.
이런속에 과연 우리가 사는 한국, 한국인은 어떤 모습으로 이 빠른시대에
대응하며 살아야 할것인지 잠시 숨을 멈추고 우리 모두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보릿고개 초근목도로 굶어죽는 사람은 없어졌다고 하나 결식아동
소년가장 소식이 가슴을 에이고 무주택설움이 오히려 보편화돼가는 현실을
도외시할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나 크게 봐서 단군이래 처음맞는 풍요라는덴 이의가 없다.
이같은 경제적발전이 우리에게 부수적으로 가져다준 변화 또는 많다.
무엇보다 우리자신들 놀라게하는 것은 세계속에 성큼 뛰어든 우리자신의
모습이다.
가령 세계 어느구석에서 항공사고가 났을때 그가운데 한국인이 포함되지
않았는지를 걱정해야 할만큼 해외로의 진출은 눈부시다.
똑같이 한국속으로의 세계의 진입도 놀랍다.
연간 백만명을 훨씬 넘어선 입국자 가운데 어느나라 어느인종 안끼이는
날이 없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경제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000억달러를 넘는 물건을 사들이고 내다파는 십이삼번째
무역의 고객으로 인적 물적 관계가 넓어진 까닭이다.
이제 의당 있을 곳에 한국인이 없으면, 그 없는 자국이 날만큼 나라의
덩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 중 략 .....
그렇다. 우리는 분명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대로 막 나아가도 괜찮은지를 물어야 한다. 정치지도자도, 관도, 국민도
모두 다른 누구아닌 자신의 양심에 질문해야 한다.
과연 나는 세계인들이 알아주는것 만큼, 괜찮은 나라의 초도자 자격,
관리의 자격, 국민될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묻고 정도하게 대답해야만 한다.
추호의 하자도 있어선 안된다.
우리는 이같은 물음에 대한 각자의 대답에 대하여 어떤 선입견을
자기고 있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쪽이냐 하며 자신이 없는 쪽에 생각이 기옮을 어쩔수
없으니 유감이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도 열망해오던 "세계속의 한국"이란 꿈이 부지불식간에
현실로 다가왔음을 제대로 인식하기 조차 하고 있으며 더욱이 그런 나라의
구성인자로서의 자격을 각기 갖추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의 기준은 물적 심적 양면을 갖는다고 믿는다.
첫째로 물적 기준, 다른말로 경제수준은 어떤가.
GNP 1인당소득 수출입액 자동차생산등 가시적인 지표들은 구태여 재론할
필요가 없다.
공개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당면문제는 양도 양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질이라는데
있다.
둘째의 심적문제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마음이란 다름아닌 사고방식이다.
양론은 있지만 사고는 환경을 지배한다. 우리까 끼니를 제때 못잇고 우물안
개구리노릇을 할때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는 세계 모든 나라와 아무련
구애없이 국교를 트고 지내는 세계속의 한국인으로서의 제기능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에 이어 국내정치인에 의해서도 이른바 "신사고"의 필요성이
제창되었다.
그것이 어떠한 뜻을 갖는가에 관하여 심심치않은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좀 막연하게는 기존가치에 구애받지 않는 달무득한 사고자세라고 해서는
큰 잘못은 없으리라 본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사고는 환경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예측을 앞서가는 시대변화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신 일파 일당의 이기주의에서 차고 일어나 글로벌한 사고, 우주적 사고로
우리의 시대착오적 아집을 대체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