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받침목 조각보고 땅굴확신 가져.....
"20여개 더 있다" 조속히 찾아내야 ***
지난 74년9월 자유를 찾아 남하, 제3땅굴의 발굴에 결정적인 제보를 했던
전북한 노동당 연락부 제53연락소 대남간첩호송안내원이었던 김부성씨(50)
는 이번 제4땅굴의 발견과정에서도 예상되는 갱도의 위치를 알려주는등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땅굴의 설계와 땅굴위치 선정작업등에 직접 참여한 경력이 있는
김씨는 지난 77년3월 제3땅굴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비무장지대를 탐색
하던중 지뢰를 밟아 왼쪽 발이 잘려 나간뒤 의족을 하고 있으며 이번에도
양구 현지에 3차례나 왕래하면서 땅굴확인작업에 많은 조언을 했다.
3일밤 늦게까지 양구 제4땅굴 현장에서 발견작업을 도와준 김씨는 자신의
피로도 잊은채 일요일인 4일낮 연합통신과의 단독회견을 갖고 이번에 발견된
제4땅굴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최근에 판 것이 아니고 지난 75년
10월 이전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북한이 판 땅굴은 평시에는 간첩들의 침투루트와 남파된 특공대
의 무기지원 보급로등으로 활용하고 유사시에는 일시에 우리 주력부대를 기습
공격 할수 있는 무서운 지하통로라고 지적하고 우리는 최신장비를 동원해서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이같은 땅굴을 하루속히 찾아내 저들의 음모를
사전에 분쇄하여 우리의 안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 이번 양구 제4땅굴 발견에 참여하게된 시기와 경위는.
<> 지난해 10월께부터 지난 3일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양구현지에 다녀
왔다.
지난 78년 발견된 제3땅굴의 측량과 설계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난해 10월께 국방부로부터 땅굴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락을
받고 직접 양구 현지에 가서 지형조사를 한뒤 예상되는 갱도의 축선과 출구를
알려주었다.
현지부대에서는 이 위치가 나름대로 예상했던 장소와 맞아 떨어지자 확신
을 가지고 본격적인 시추를 시작, 12월하순께 땅굴의 징후를 발견했으며
나는 그뒤 좀더 명확한 땅굴의 증거를 발견하기 위해 지난 1월말과 지난 3일
에 재차 현지에 가서 땅굴의 확인작업을 했다.
- 북한에서는 언제부터 땅굴공사에 참여했는가.
<> 군대를 제대하고 함흥공대 기계과를 66년에 졸업한뒤 67년 북한노동당
연락부 개성연락소에서 간첩호송안내원으로 일해 왔는데 기계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지난 72년부터 땅굴의 측량과 설계를 맡아 귀순하기 전인 74년까지
작업을 했었다.
- 이번에 발견된 땅굴의 준공시기는 언제쯤으로 보는가.
<> 땅굴공사는 원래 지난 71년9월25일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시작됐으며
75년10월10일 노동당 창건 30돌 기념일을 기해 모든 땅굴공사를 완료하도록
계획돼 있었다.
지난 78년 발견된 제3땅굴은 평야지대로서 아래로 비스듬히 파들어 가다가
중간지점에서 다시 약간 위쪽으로 경사지게 파올라오는 어려운 공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완료기간을 넘겨 발견직전까지 작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제4땅굴은 지형상 산밑에서 비스듬히 위쪽으로 파
올라오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쉬운 공사이기 때문에 75년10월 이전에 완공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현장에서 북한이 이번 땅굴을 팠다는 증거를 볼수 있었는가.
<> 땅굴확인작업을 위해 현지에 몇차례 갔던 것도 시추파이프를 통해 촬영
한 필름만 보고는 이것이 인간이 판 땅굴인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
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3일 현지에 가서 직접 보니까 레일을 밑에서 받치는 침목 수십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전등에 연결하기도 하고 폭파장치에도 쓰이는 전기
철선도 여러조각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땅굴벽에는 카바이트불로 그을려 쓴 "조국통일 속도전" "19XX 완성"
등의 낙서가 있었고 삽으로 흙을 퍼담을 때 밑에 까는 철판도 그대로
있었다.
- 북한에서 땅굴의 위치선정은 어떻게 하는가.
<>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남쪽에서 땅굴 작업이 관측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다.
그리고 계속 능선을 따라 파들어올수 있는 지역이 좋으며 중간에 강이 없어
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다.
지난 60년대 중반에 평양지하철 공사를 할 때에도 지하 100미터 지점에서
대동강물이 새어 들어와 공사인부 400여명이 죽은 일이 있어 북한에서는 강
밑을 파는 것을 몹시 겁내는 경향이 있다.
- 땅굴은 어떤 목적에 맞게 설계하는가.
<> 김일성은 지난 71년 땅굴에 대한 교시에서 평시에는 대남공작원 침투
루트로 이용하고 남조선혁명이 일어났을때 무기를 지원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혁명적 대사변(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특공대를
침투시켜 전방주력부대를 기습하는데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라고 지시한 바
있다.
실제로 내가 설계를 할 때에는 야포까지는 고려하지 않았지만 완전무장한
병력이 두줄로 달릴 수 있고 무반동포까지도 이동할 수 있도록 높이 2미터
폭 2미터로 설계했는데 이 정도의 크기이면 1시간에 3만명이 지나갈 수 있다.
- 제4땅굴을 제보했다는 신중철씨를 만나봤는가.
<> 신씨와는 지난 83년5월 그가 귀순한 이후 여러차례 만나 봤다.
신씨는 이번에 발견된 땅굴의 반대편초소에 근무했던 북한군 대위로서 땅굴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아 구체적인 땅굴의 위치는 몰랐으나 북쪽에서
땅굴을 파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도 철원부근에 있는 제2땅굴의 동쪽지점에 땅굴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신씨의 제보로 제4땅굴의 존재가 좀더 확실하게 드러났던 것
이다.
- 당국에서는 땅굴이 20여개나 더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땅굴작업은
북한내부의 어느 부서에서 관장하며 앞으로 얼마나 더 발견될 것으로 보는가.
<> 지금까지 발견된 것중 제2,3,4땅굴은 노동당 연락부에서 판 것으로
연락부 대남공작부에 있는 군인들이 직접 판 것이 확실하며 제1땅굴은
인민무력부에서 따로 판 것으로 알고 있다.
땅굴의 숫자는 내가 북한에 있을때 위치 선정을 위해 직접 가봤던 곳이나
지휘관의 운전수들을 통해 대충 땅굴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알고 있었던 지역
만 해도 9개에 달하기 때문에 20여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며 땅굴발굴 작업
에 동원되는 최신굴착장비등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더 많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