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 - 45.11 = 미 제24군단 병력 7만여명과 7함대병력, 일본군의 무장해제
위해 남한 각 지역에 배치.
<>48.8 - 49.6 = 군사고문단 500여명을 제외한 모든 미군철수(1차 철군).
<>50.6 - 53.7 = 6.25전쟁으로 딘소장이 사장단인 미 제24사단에 이어 미8군
사령부 선발대등이 급파되는등 미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끝날 무렵 육군7개
사단, 해병대 1개사단등 36만명 주둔.
<>54.3 - 11 = 미보병제45(뉴욕), 40(캘리포니아주 국민방위군으로 개편),
25(하와이), 3(미본토), 24사단(일본 재배치)과 용산 8군사령부(일본
자마캠프로 이동했다55.7. 다시 한국주둔)및 오산 5공군사령부(일본
나고야기지), 제8전폭연대(일본 규우슈), 제3경폭연대(일본 사세보기지),
제18전폭연대(필리핀 클라크공군기지), 제15정찰중대, 제49전투폭격대대등
철수(2차 철군)/오산에 제5공군전방사령부 설치.
<>54.9 = 미 제5공군사령부 오산서 일본 나고야로 이동.
<>71.3 = 7사단과 2사단등 주한미보병 2개사단중 7사단 본토로 철수, 해체/
주한미군부대 한국인 종업원 6,000명 감원 통보.
미공군 제3전술비행단 군산기지서 창설.
<>77.6 - 8 = 제10차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 통해 "78년말까지 주한미
지상군 전투병력 6,000명 철수" 공표.
이에따라 주한 미 제4미사일 사령부 산하 나이키 허큘리스 대대와
어네스트 존 대대, 장비를 한국군에 이양하고 해체.
1,023명 철수.
<>78.4 = 주한미8군 참모장 존 싱글로브준장의 주한미군 철수반대발언과
관련한 파동으로 78년의 제1진 철수규모를 당초의 6,000명에서 3,400명
(전투요원 800명, 비전투요원 2,600명)으로 축소 조정.
(이후 레이건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주한미군은 다시 증원되기 시작,
카터행정부 시절의 3만8,000명에서 4만3,000명으로 늘어남)
<>89.6.23 = 데일 범퍼즈 미상원의원이 주한미지상군 1만명 철수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제출.
<>89.11.9 - 17 = 데일 범퍼즈 의원이 제출한 법안의 대체법안인 이른바
넌-워너수정안 미 상/하원 본회의 각각 통과(미행정부로 하여금 주한미군의
부분적/단계적 감축에 관해 협의, 그 결과를 90년 4월 1일까지 의회에
보고토록 요구)
<>90.1.30 = 한/미 양국, 주한미공군의 비전투요원 2,000명 감축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