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신정부를 이끌게 된 이온 일리에스쿠 신임구국위의장 (59)은
구국위에 참여한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개혁동정론자라는 이유때문에
숙청되기 이전까지는 한때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
일주일간에 걸친 유혈혁명끝에 처형된 차우셰스쿠 정권에서 활동하던
일리에스쿠의장은 청소년장관을 거쳐 지난 71년 공산당 중아위 이념담당
서기직에 올랐을때 정치적 위치가 절정에 달했으나 차우셰스쿠로부터
"젊은이들의 과업을 모르는 관료주의적인 사고를 지닌 소자본주의 지식인"
이라는 비난을 받고 물러났다.
일리에스쿠의장은 당시 루마니아 청소년들에게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같은 대중운동을 도입하려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그후 알려졌다.
*** 조직 - 조정 - 여론에 개방적 명성 얻어 ***
지난 1930년 3월 부쿠레슈티 인근 올테니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53년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함께 3년동안 동문수학.
짧은 각료생활을 마치고 이번 민중혁명의 발단이 된 시위가 발생했던
티미쇼아라시가 주도인 티미시주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면서 조직과 조정,
그리고 여론에 개방적인 자세로 명성을 얻었다.
이때문에 전권을 장악한 구국전선의 대변인으로 등장하자 티미시지방
주빈들로부터 지지서한을 많이 받았다.
지난 74년 정치적인 재기를 시도,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복귀했으나 소련
접경지역인 이아시시 행정관으로 좌천됐으나 차우셰스쿠에 의해 80년대에는
줄곧 매장되다시피 했다.
그는 84년 중앙위 위원직에서 물러났으며 차우셰스쿠의 환경정책을 비판
했다는 이유로 국가수력발전국장직에서도 숙청됐고 87년에는 차우셰스쿠가
거부한 소련의 개혁조치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이 "조직을 아는 사색가"라고 평할 정도로 치밀한 그는
지난주 차우셰스쿠의 실각과 체포, 내년 총선결정, 공산당독재포기, 신헌법
준비등을 발표, 위치를 굳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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