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87년 중반부터 파나마의 안토니오 노리에가 장군을 제거하려고
여러차례 음모를 꾸몄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노리에가는 아직 권좌를 지키고
있다.
다음은 국제금융과 무역의 중심도시로 조용한 가운데 나름대로 번영을
구가했던 파나마시티가 정치불안과 함께 경제위기로 빠지기까지의 상황을
추적한 것이다.
<> 87년 6월6일 - 노리에가를 보좌했던 로베르토 디아즈 에레라퇴역대령,
노리에가의 선거부정과 정적의 살인을 공개적으로 비난함에 따라 최초의
반노리에가 데모가 발생.
<> 6월 10일 - 노리에가의 앞잡이로 알려진 에리크 아르투로 델바에 대통령
비상사태를 선포, 이에 대항해 업계와 노조단체 200개 반노리에가
연합전선구축.
<> 6월 26일 - 데모중에 한 청년이 총에 맞아 처음으로 희생. 정부는
야당색이 짙은 언론사를 폐쇄.
<> 9월 24일 - 미상원, 민간정부의 설립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통과 시키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원조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통보.
<> 88년 2월 4-5일 - 미정부, 노리에가를 마약밀매혐의로 기소.
<> 2월 25일 - 델반예 대통령, 노리에가를 축출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쫓겨나고 후임에 노리에가의 측근인 문교장관이 대통령에 취임.
<> 3월 4일 - 파나마 정부, 예금주들이 한꺼번에 많은 돈을 인출하자 은행의
문을 닫음.
<> 3월 16일 - 노리에가, 경찰의 총수가 주도한 쿠데타를 분쇄. 데모대로
파나마시티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고 전국이 24시간 정전.
<> 5월 8일 - 2개월간 문을 닫은 은행들 업무를 재개.
<> 5월 25일 - 조지 슐츠 국무장관, 노리에가의 퇴진과 관련한 비밀협상이
사실상 실패했으며 더 이상의 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
<> 5월 26일 - 권력기반이 확고해진 노리에가, 의회에서 미국이 내국문제에
간섭한다고 비난
<> 9월 27일 - 솔리스 팔마, 유엔총회에서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했다고 비난.
<> 89년 1월 20일 - 노리에가와 측근들, 레이건의 퇴임을 자축.
<> 4월 7일 - 파나마 정부, 반노리에가 방송국을 운영하던 미국인을
체포했다고 발표하면서 이는 선거를 앞두고 불안을 조성하려는
음모라고 비난.
<> 5월 7일 - 선거부정시비가 난무한 가운데 대통령 선거 실시.
<> 5월 8일 - 파나마 정부, "외국의 간섭"을 이유로 대통령 선거 무효선언.
<> 5월 10일 - 신노리에가 민병대, 정부의 선거 무효 선언에 항의하는 야당
후보들을 공격, 기예르모 포드 부통령 후보가 부상하고 그의 경호원 1명이
살해됨.
<> 9월 1일 - 수개월에 걸친 미주기계 (OAS)의 중재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노리에가 장군은 무명의 정부 관료인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를 신임 대통령에
지명.
<> 10월 3일 - 일단의 소장파 장교들이 이끄는 반군이 노리에가를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를시도, 한때 라디오 방송국을 점령하고 노리에가 축출 성공을
선언했으나 6시간만에 신 노리에가 정부군에 의해 진압됨.
<> 11월 중순 - 파나마 주둔 미군 시설물들에 대한 폭탄 테러 위협이 지속돼
모든 미군 기지의 보안이 강화됨.
<> 12월 15일 - 파나마 의회, 미국과의 "전시 상태"를 선언하고 노리에가에게
광범한 통치권 부여.
<> 12월 16일 - 미군 장교 1명이 파나마 방위군 본부 근처에서 일단의
파나마 병사들에게 피살됨.
<> 12월 18일 - 한미군 장교가 파나마 경찰 1명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힌
사건 발생.
<> 12월 19일 - 미군 수송기들이 10분마다 파나마에 물자를 공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부시 대통령, 백악관에서 최고위 보좌관들과 회동.
<> 12월 20일 - 백악관, 미군의 파나마 공격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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