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대통령은 24일 저녁 숙소인 로잔느의 보리 바쥐 호텔에서
수행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서독과 헝가리를 방문한 소감과 국내문제등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다음은 노대통령과의 일문일답 요지.
-- 유럽 4개국 공식방문 중간시점에서 총체적으로 느낀 소감은.
"오늘만해도 부시 미대통령이 냉전종식을 제안했고 소련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정세가 엄청나게 변하고 있는데 돌이켜보면 올림픽까지 치른
우리나라가 북방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어쩔뻔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방정책없이 이런 상황을 맞았으면 당황했을 것입니다.
미리 북방정책을 펼친 것은 시의적절했으며 다행스런 일로 생각됩니다.
독일에서 또 헝가리에서도 북방정책에 자부심을 느낄수 있읍습니다.
헝가리는 북한이 김평일(김정일의 이복동생)을 대사로 보낼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 나라인데 이번에 보니 북한사람들이 딱할 정도로 나타나지
않았어요."
-- 서독방문중에 느낀 점은 어떤 것이었읍니까.
"출국 하루전날 야당총재들과 만났을때도 얘기했지만 우리와 독일은 큰
차이가 있읍니다.
서독은 지난 20년간 오늘의 상황을 수용할 역량을 쌓아왔지만 우리는 그게
없었읍니다.
우리는 구태여 얘기하지만 7.7선언이후에나 준비해 왔지 않습니까.
독일에 가서도 그 점을 느꼈읍니다.
새롭게 느낀 것이 있다면 서독의 야당뿐만 아니라 동독사람들도 감성적이
아니고 이성적이며 "독일은 하나다"라고 성급하게 통독에 나서는 것이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얻고 동서독의 내왕을 편리하게 하고 동질성을 회복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통일의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휴전선이 무너지면 예상밖의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은 해방직후의 상황을 견주어보면 예측이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지금부터 미리미리 무엇을 대비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독일에서 결코 통일은 감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정치인들도
일부 학생들의 주장에 끌려다니면 큰 불행을 초래할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읍니다."
-- 서독과 헝가리 방문을 통해 새로운 남북정책을 구상한 것이 있다면
밝혀 주십시요.
"주변여건은 북방정책을 통해 형성되고 있고 실질적인 통일방안까지
내놓았는데 이같은 방향과 원칙이 세계 추세의 흐름에 맞아들어가고
있읍니다.
이번 순방을 통해 그 원칙을 보완할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절대로 분단극복은 폭력이나 전쟁의 방법으로 해결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겠읍니다.
분단된 나라중 전쟁과 폭력의 방법으로 분단을 극복한 나라의 예라면
월남인데 불행과 비극을 초래하지 않았읍니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은 이미 결판이 났다는 것이 베를린장벽
붕괴가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읍니다.
적대관계였던 미-소도 냉전종식을 하겠다는데 우리나라가 아직도 냉전을
지속하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을 손상하는 문제이며 민족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도 냉전은 종식돼야하며 또 그것은 우리의 절대절명의 명제입니다.
지금까지 내놓은 방안들을 다시 정리보완하되 북한이 받아들일수 있는
협력방안이 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남과 북이 대화와 협상을 해야겠지만 주위에서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련과 중국, 동구권에 우리의 북방정책을 통해 공감대를 넓히고
북한측으로 하여금 자기들의 체제가 넘어진다는 불안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북관계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과연 자기들을 도와주려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할수 있고 북한의
자존심이 꺾이지 않는 방법으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북한의 문을 두드린 것에 대해 외적으로는 별다른 반응이
없지만 북한내부에서는 상당한 반응이 있었다고 믿읍니다."
-- 이번 헝가리방문에서 볼때 동구권과의 관계진전이 너무 급속한 것이
아니냐는 느낌도 듭니다.
"헝가리의 분위기를 보면 결코 급속한 것이 아닙니다.
헝가리는 그간에 축적한 것이 있고 저력이 있는만큼 경제번영을 이룰수
있을 것입니다.
양국의 관계가 발전되면 우리는 헝가리를 한편으로는 EC진출의 교두보를
삼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구권을 향한 기지로 삼을수 있을 것입니다."
-- 국내에서는 대통령의 스위스 방문기간중 남북정상회담등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는데.
"아직 북한은 그같은 준비가 돼있지 않다다고 봅니다.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있겠지만(정상회담을 지칭한듯) 아직은 그렇지
못한 형편입니다."
-- 서독방문중 베를린장벽을 방문하지 않은것은 아쉽게 생각되는데
어떠십니까.
"나도 그게 가장 아쉽습니다.
베를린이 아니라도 동서독 국경 어느 곳이라도 방문하길 원했지만
초청자측인 서독이 장벽까지 무너지고 보니 안전보장을 못하겠다고 해서
방문하질 못했읍니다.
그래서 내독성장관을 내게 보내 자기네 의회에 보고한 자료 그대로
베를린장벽 붕괴상황을 설명해 주더군요."
-- 대통령께서 제안한 평화시 건설이 어렵다면 군사분계선내의 특정
지역에 남북이 얼굴이나마 볼수 있는 지점을 만들면 어떨까요.
"일산 신도시건설이 되면 그게 바로 평화시로 연결될 겁니다.
전쟁가능성이 있다면 일산지역에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겠지요.
그러나 7.7선언등으로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일산
신도시를 건설하고 그것이 바로 평화시 건설의 준비단계입니다."
--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우리의 새로운 복안은 무엇입니까.
"내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더라도 자존심을 회복할수 있는 구상이 속출할
것이며 우선순위는 시의적절하게 정리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 대통령께서 생각하기에 북한이 개방화의 물결에 언제까지 버틸것
같읍니까.
"서독의 콜총리나 바이체커대통령도 북한이 납득이 안간다고 했읍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의 TV도 안 보느냐"고 했어요.
그래서 실상을 얘기해 주니 놀라더군요.
북한도 동구권에 유학생과 외교관이 나가있고 그들이 북한에 돌아가게
되면 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수 없을겁니다.
우리는 지금 할수 있는 노력은 다하되 급히 서서둘러서서는 안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에 세월이 흘러 "아 왔구나"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 순방기간중 북방외교등 외교적인 성공은 거두고 계시는데 국내소식은
그렇지 않은것 같읍니다. 국내정치도 잘 풀려나가리라고 보는지요.
"외교는 보람있게 하면서도 국내가 시끄럽고 복잡해서 걱정이고 또 어떨
때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올림픽을 성공시킨 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럽지만 국내정치문제는 뭔가
께름직한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미-일-독등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것 같읍니다.
여소야대니 시끌벅적한 것을 잘 참고 끌고나가는 것을 존경스럽다며
평가해 주고 있어 내가 오히려 착잡합니다.
그러나 한칼로 "결단이다" 뭐다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될수 없다는
점에서 위로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 지금 말씀으로 미루어보면 귀국후에 결단적 조치는 없다는 얘기입니까.
"세계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정한 좌표를 다시 확인하고 객관적으로
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됐읍니다.
야당총재들도 만나보면 서로가 이해하고 통하는 점이 많읍니다.
우리가 서로 참자고 하면 얘기가 통합니다.
90년대초까지는 흑백논리의 정치스타일을 벗고 새로운 협력의 정시치스타일
을 정착시켜야 합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시켜야 합니다.
또 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인만큼 북방정책은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은 위험이 따르므로 주위 여건을
변화시켜 스스로 변하도록 해야합니다.
국정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온 국민이 정성을 모아야 합니다.
80년대의 자질구레한 싸움은 90년대가 가기전에 그쳐야 합니다.
귀국후에 더욱 전력을 기울일테니 여러분들도 협력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