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권내에서의 전대미문의 백만인 데모가 연일 계속되더니 동/서독을
가르는 장벽이 사실상 무너졌다.
서독 빌트지는 "우리는 마침내 장벽을 허물었다. 독일은 통일에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라고 선언했다.
베를린장벽의 개방은 또 동시에 유럽분단의 종식과 연상작용을 한다.
"어젯밤 바뀐것은 유럽의 정치지도가 아니라 유럽사회질서이다".
영국 인더펜던트의 논평대로 유럽은 지금 극적인 이 변화를 어떻게
관리해서 새로운 유럽을 개척나가는 가로 온통 들떠있다.
크렌츠의 개혁을 "고속"으로 표현한 것은 최근 단시일내의 동독정치국
전원교체와 여행자유화를 지칭한 것이지만 더블어 동독이 앞으로도 개혁을
가속할수 밖에 없다는 전망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한마디로 동독의 개혁은 물론 고르바초프물결이 그곳으로 밀려온 결과
이지만 동독이 동구권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더불어 독일통일문제로해서
고르바초프개혁이 갖는 세계적의미를 한단계 높이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기에 남음이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제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련 동독이라는 두개의 바퀴를 단
셈이 되었다.
두개의 국가라는 독일안에서 또는 국제적으로 이미 확립된 테두리안에서의
이같은 양독접근은 물론 1992년 EC 통합에도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유럽은 이미 국가단위 내셔널리즘을 대체하는 유럽공동체 의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만큼 "하나의 독일"이 바로 미/소나영/불에의 위협
이라는 등식은 그대로 적응되기 힘들다 본다.
바뀌고 있는 것은 유럽정치지도가 아니라 유럽사회질서라는 논평이 이같은
방향을 뒷받침하하고 있다.
..... 중 략 ......
근대국가는 기본적으로 군사국가 경제국가 영토국가이다.
계획경제의 비능율 속에 강행된 군사경쟁에서의 이탈이 바로 페레스트로
이카라는 점에서 그것은 근대국가의 이런 성격을 크건 작건 어느 정도 수정
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것이 다시 유럽에서 EC 통합이라는 초근국가적 흐름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가 느끼는 변화의 기본구조이다.
부시행정부도 1년여의 정관끝에 오는 12월 지중해함상회의를 고비로
고르바초프의 도전에 대응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고르바초프 개혁에 부정적이던 미 CIA도 그이 권력기반이 확고해 졌다고
보는 쪽이다.
정보국의 분석으로는 소련이 군사산업중심에서 민간산업중심으로
경제체제를 바꾸는데 앞으로 2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소련의 소비자가 구체적으로 경제개혁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는데는
앞으로 2년이 더 필요할 것이며 권력기반이 확고하다는 것은 그때까지
향후 6년을 버틸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정부도 이미 북방정책이나 통일정책에서 전진적인 입장을 설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정작 중요한 결함은 변화에 대한 감각이 늦다는
점이다.
1971년 키신저가 북경을 전격방문했을때 일본이 느낀 소외감과 충격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겠지만 우리의 대소진출이나 동구관계설정에서
지금보다 더 정확/신속한 전략이나 정책집행 없이는 미/일/소/중이 벌일
무제한의 순열조합식 사태변화에 능동 참여할 수는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