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돌연한 사퇴가 정가에 적지않은 충격과 파문
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위원장의 사퇴는 특히 선거를 관리해온 책임자로서 불법/타락선거를 막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일뿐 아니라 선거의 당사자인 정치권에
경종을 주기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충격은 더한것 같다.
이위원장은 작년 7월 선관위원장에 취임한 이래 "선거가 적법하고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고서는 민주주의의 존립자체를 위태롭게 할것"이라는 판단아래
동해시와 영등포을의 두차례 재선거과정에서 공명선거풍토를 확립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벌여왔다.
*** 불법선거감시에 무던히도 애썼으나 타락 더욱 심해 ***
선관위는 먼저 지난 5월의 동해재선거에 선거관리인력을 집중시켜 불법선거
감시활동을 벌인끝에 여야후보자와 선거사무장을 고발조치한데 이어 영등포을
선거에서도 민정, 평민, 민주당 후보를 2차례씩이나 고발하는등 전에없이
엄정한 선거관리를 통해 공명선거 분위기를 잡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특히 영등포을선거때는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의 민정후보지지호소
편지가 선거법에 위배될수도 있다는 선관위 유권해석을 내려 "성역없는 공정
한 선거관리"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영등포을선거에서는 불법벽보와 현수막이 거의 사라지기도
했으나 금품공세, 흑색선전물 살포, 인신공격등 불법/타락행위는 오히려 더
했고 유세장 폭력사태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이위원장은 후보자와 각당대표의 고발이라는 극약처방까지도 불사했고
이러한 강력한 조치는 정치권은 물론 검찰등 행정부의 호응을 염두에 둔 조치
로 해석됐다.
*** 여야 - 검찰 - 경찰등의 미온적태도 불만 작용 ***
그러나 영등포을선거가 끝난지 2개월여가 지나도록 고발조치에 대한 검찰의
후속조치는 뒤따르지 않았고 정치권은 국정감사와 5공청산등에 매달린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사퇴배경에는 정치권과 행정부에 대한 축적된 불만이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공명선거가 민주주의의 요체인 만큼 정치권 모두의 일치된 노력이 절실함
에도 입법부는 물론 행정부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지 않아온데 대한
불만이 사퇴로 표출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재임중 비현실적인 선거법을 개정해 제도적으로도 공명선거를 정착
시키기 위해 국회와 각 정당에 선거법개정에 관한 선관위의 의견서를 배포
했는가 하면 지난 재선거때 노대통령을 포함한 4당대표에게 공명선거풍토
조성에 협조할 것을 호소하는 공한을 발송하기도 했었다.
*** 공명선거풍토정착 자성계기 삼아야 ***
이위원장이 사퇴를 결심한 것은 사퇴라는 마지막 방법을 통해서라도 공명
선거풍토 정착을 위해 정치권과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위원장이 지난 13일의 선관위 전체회의에서 "두차례의 재선거 과정에서
미약한 선관위의 권능과 인력으로 공명선거풍토를 조성하려 나름대로 노력
했으나 한계를 절감했다"고 토로한 것은 이러한 심경을 그대로 반영한 것
으로 볼수 있다.
그는 또 "선거는 공정하고 적법하게 치러져야만 진정한 의미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면서 선거가 민주주의와 정치
안정의 초석임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사퇴가 공명선거분위기 조성의 밑걸음
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표시했다.
이위원장이 "선거가 선관위 만의 업무가 아닌 중요한 국정문제"임을 지적
하면서 선거법위반자에 대한 엄정처리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1차적으로
선거사범을 적발해야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검찰과 경찰등 행정부측의 미온적
인 태도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 정치권이 오히려 선관위를 견제 ***
그러나 그의 주표적은 이미 선거의 타락상에 불감증환자가 되다시피 해온
정치권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정치권은 그동안 이위원장의 결연한 공명선거풍토조성 노력에 불편한 심기
를 노출하고 이를 음으로 양으로 견제해 왔다.
특히 영등포을 재선거때는 각당이 선관위의 불법/타락선거방지 노력에
반발했고 심지어 국정감사동안에는 이위원장에 대한 정치성 공세가 벌어
지기도 했다.
이위원장의 사퇴는 특히 내년의 지방의회선거와 내후면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그리고 14대 국회의원선거등 거의 매년마다 선거를 치러야 할 앞으로
의 정치일정을 감안할때 선거의 부작용을 방지하고 민주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 선거와 정치에는 으례 부도덕이 따르는 것이 문제 ***
기실 우리의 정치권은 그동안 너무나 도덕적으로 타락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위원장의 공명선거분위기 조성노력을 도외시해온데서 단적으로 나타
났지만 우리 정치권은 선거와 정치에는 으례 부도덕하고 타락한 양상들이
뒤따르며 그런 현상을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고 받아들여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정치문화속에 정치인들은 공공연한 매표행위와 흑색선전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벌여
왔고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불법행위를 나무라기에 앞서 일단 향응부터 받고
보자는 유혹에 사로잡혀 한표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 도덕적 타락 더이상 용인해서는 안돼 ***
따라서 이위원장의 사퇴는 이러한 정치권특유의 만성화된 도덕적 타락을
더이상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띄우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은 앞으로 비현실적인 선거법을 뜯어 고치는 작업에
서둘러 착수하는 한편 새로 만들어지는 법을 존중하는 준법정신에도 수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 공명선거위한 근본대책 - 선거법 고쳐야 ***
과거처럼 선거를 코앞에 두고 당리당락적 차원에서 선거법을 뜯어 고치려고
만 할 것이 아니라 공평한 경쟁과 공명풍토가 뿌리 내릴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작업을 서둘러 벌여야 한다는 것이 국민 모두의 바램이다.
이위원장의 돌연한 사퇴는 그와 선관위의 활동에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책임회피"라는 일부의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지적에도 불구하고 공명선거가 구두선으로 그치고 말아
온 우리의 정치현실에 비추어 정치권이나 행정부 모두 이위원장의 사퇴를
공명선거 정착이라는 충정으로 받아들여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
들이 지배적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