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그동안 취해온 개방조치들은 7단계로 구분된다.
*** 합영법등 추진, 효과엔 한계 ***
첫 단계는 지난 84년 9월의 합영법제정이다.
외국의 합작선이 합작회사의 주식지분을 50%이상 차지할수 있게함으로써
경영의 자율성을 많이 허용했다.
그러나 합영법은 까다로운 시행세칙과 협소한 국내시장, 연체된 외채,
그리고 교조적인 계획경제체제등으로 서구자본을 유치하는데 실패했다.
북한은 그러나 제3차산업에 대한 조총련계의 투자가 늘어난데 희망을 걸고
86년8월에 제2단계의 개방조치인 조선국제합영총회사를 설립했다.
국제합영총회사는 설립후 1년동안 15개의 합영회사를 세우는등 적지않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으나 87년11월의 KAL기사건이후 조총련계의 대북투자는
격감했다.
그 이유는 북한사람들의 국제적인 사업관례에 대한 무지와 철저히 통제된
경제구조의 취약점때문이다.
곤경에 처한 북한정부는 3단계의 개방조치로 조총련계 투자자들에게
합영업체의 100% 소유를 허용, 89년2월에는 자전거 모터사이클과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신흥합영회사와 명전의료기기합영회사가 조총련계업자들만으로
설립됐다.
북한은 88년11월 제4단계의 개방조치로 합영공업부를 설치, 외자도입을
추진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 재미동포 박경윤여사가 500만내지 1,000만달러의 투자로
고려상업은행 금강산국제무역개발회사및 금강산국제관광회사를 설립했다.
박씨는 고려상업은행을 통해 북한의 채권을 발행해 재미동포의 대북개발
자금투자를 유도하는등 북한의 개방조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6단계까지의 북한경제개방 성격을 보면 각기 협소한 단계적 진전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북한이 시장경제원리를 일부 수용하여 경제구조를 개편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을 약간씩 열어 눈앞의 실리만 얻으려는데 있다.
북한의 지금까지의 협소한 개방조치들이 이러한 한계를 갖고 있어 제7단계
도치인 대남경제교류는 상당한 중요성을 갖는다.
*** 경제원조시각 금강산~원산개발 참여를 ***
공개적 남북교역은 지난 88년 11월21일 북한산 조개 40kg이 부산에
입항된 것으로 시발로 89년1월에는 교역액이 2,250만달러에 달했다.
같은 시점에 북한은 정주영씨를 초청, 금강산과 원산을 연결하는 대규모
관광개발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금강산-원산개발합의는 오히려 남북간 물자교역까지 시들게
만들었다.
북의 계약위반이 큰 이유지만 한국정부가 대북교역을 위탁이나 중계하고
있는 제3국상사들에 대해 확인조사를 시작하는등 직간접으로 교역분위기를
냉각시킨 것도 사실이다.
한국정부의 그러한 조치는 금강산개발합의서가 북한의 대남정경분리전략의
신호였기때문에 취해졌다.
북한이 자본과 기술을 원하면서도 남쪽 기업체만 상대하고 고위당국자
회담을 중단하는등 정부간의 공개접촉을 회피했던 것이다.
대북경제관계에 관한한 기술적이나 관습적인 논리를 초월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남북교역의 조국통일 역할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원대한 비전에서 경제원조를 한다는 긍지로 우선 금강산-원산개발에
참여할 것을 권고한다.
한국은 또 대북합작투자의 선별적 추진을 위해 대북경제협력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 기금으로 북한에 합작투자를 제안할수 있게하고 남쪽 기업이 이를
선별적으로 추진, 북측과 합의를 볼경우 투자액의 50%를 융자해 주는 것이다.
이는 정부간 접촉없이도 남북교역과 통일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방편이 된다.
<< 미국 위스콘신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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