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부의장까지 지낸 4선의원출신, 정치부기자로 집력과 상황판단력을
인정받아 9대때 유정회의원으로 발탁됐고 10대에는 공화당 11-12대 민정당
의원을 지냈으나 13대에는 고향인 목포에서 평민당의 황색바람에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단구로 몸집은 작지만 잠재된 순발력이 대단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이점
때문에 맡은지 얼마되지 않은 체신장관에서 골치아픈 노동장관으로 발탁된것
같다는게 그를 아는 사람들의 분석.
달변에 노래솜씨는 프로를 뺨치는 수준으로 친화력이 대단해 민정당창당시
공화당출신으로 몇안되는 창당멤버로 활약했으며 현역시절 호남출신
의원들간에는 좌장역을 맡아왔다.
그러나 지나치게 빠른 상황판단이 가끔 그의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부인 김운자 여사와의 사이에 2남1녀가 있으며 취미는 바둑(아마 3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