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끄러운 국정감사자료 유출 ***
정부가 "대외비"로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 가운데 일부가 대량으로
유출된 사건이 터져, 서경원의원 밀입북사건으로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여름 정가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며칠간의 보도를 통해서 드러난 이 사건의 진상인즉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지난주말 청주경찰서가 전교조 충북지부사무실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작년 가을 국정감사때 야당의원들 요구로 국회문공위원들에게 제공된
대외비 국감자료 80여건이 원본 그대로 발견되었다.
사건이 터지자 당시 이 자료제출을 충북/경남도교위에 요청했던 3명의
문공위소속 야당의원들에게 일차적으로 유출혐의가 쏠렸으나 이들은 혐의사실
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자 민정당은 자체조사단을 구성, 당차원에서 진상규명을 서두르고
있다.
사건을 보는 심경은 한마디로 착잡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자질과 의식수준이 한심스럽고 그런 정치인들에게
국정을 맡기고 있는 우리 처지가 안타깝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런 사실이 없다고 펄쩍 뛰는 의원의 말을 거짓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혐의를 받게 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게 상식인데
그걸 자신을 정치적으로 음해하기 위해서라거나 국회기능을 축소시켜 보려는
정치적 저의를 깔고 있다는 말로 뒤엎기에는 설득력이 미약하다.
국민은 정치인들의 그와 같은 궤변과 상투적인 논리에 이젠 식상할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
보좌관이 그랬을 가능성은 있으나 자신은 결백하다는 해명도 무책임하고
궁색한 변명임에 별 차이가 없다.
게다가 또 제공받은 자료가 관료주의적 타성에서 보면 대외비일지 모르나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과연 그런 대외비를 지켜야 하는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저 아연해질 따름이다.
법을 제정하고 그 충실한 집행을 감시할 책무를 지고 있는 국회의원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는지 실로 그 자질을 의심케한다.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법의 저촉여부를 논하기도 한다.
즉 기밀과 대외비는 다르며 대외비자료의 유출을 범법행위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점에 관해서는 대법원판례도 있고해서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백보를 양보해서 그런 행위가 설령 법과는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대외비로
한다는 약속과 더불어 국정수행을 목적으로 제출받은 자료의 용도외 유출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어떤 변명으로도 결코 면할 수가 없다.
... 중 략 ...
비밀은 적을 수록 좋다.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은 바로 비밀이 적은 점이다.
그러나 비밀이 전혀 없을 순 없다.
개인과 가정, 기업에도 지켜야 할 비밀이 있다.
하물며 국가에서 비밀이 없는 경우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분류에 관해 시비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법률이나 합의에 의해 가려질 일이지 일방적으로 결정될
일이 아니다.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사태, 파기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사태
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그것은 법과 질서, 그리고 도의가 깡그리 무너지는 사태다.
이번 사건이 만에 하나라도 일부에서 경계하는 것처럼 불순한 의도가
개재되었거나 조직적인 것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그 진상을 신속히 가려
재발되는 일이 없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