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가장 위대한 발명품, 한글
창의성·합리성 응축된 자랑거리
남북간 말과 글 동질성 찾기 필요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
[다산칼럼] 한글날을 앞두고

내달 9일은 한글날이다. 스스로의 문자 창제를 기념할 수 있는 민족은 전 세계에서 우리뿐이니,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한 사실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랑거리다. 소통과 의사 전달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을 국왕 스스로가 오로지 일반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문자를 창제한 일은 전체 인류사에서 세종대왕 말고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한글이 지닌 합리성, 독창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다. 발음기관의 모습을 본떠 글자를 만든 사실도 대단한데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해 ‘ㄱ’ ‘ㅋ’ ‘ㄲ’처럼 음성학적으로 동일 계열의 글자를 창제한 것은 놀라운 창의성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촉망받던 젊은 미술가로서 작품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노마 히데키는 한글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나이 서른에 다시 한국어 전공의 길에 들어섰다. 2010년, 그가 57세를 맞아 출판한 《한글의 탄생》이란 책은 일본에서 큰 저술상을 받기도 한 역작인데, 그는 한글을 ‘문자라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한글은 인간이 창제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발명품이며, 바로 그 덕에 오늘의 우리는 문화민족으로서 자긍심을 지니고 살고 있다.

언어는 결국 관습이며, 특히 모국어는 본능적으로 터득하는 것이기에, 한 나라의 말이나 글에 대해 합리성을 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지만 우리 언어만큼 간결하며 한글처럼 과학적인 문자는 없는 듯하다. 특히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과 비교하면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외국인이 일본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렵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아마도 같은 문자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발음이 여러 가지로 바뀐다는 사실일 것이다. 예를 들어 ‘生’을 우리는 항상 ‘생’으로 발음하는 데 비해 일본어에서는 ‘이’ ‘우’ ‘하’ ‘나마’ ‘세이’ ‘쇼오’ ‘조오’ 등 수십 가지에 달할 정도로 때에 따라 다르게 발음하는 것을 보면 일본어는 왜 이리 복잡할까라는 느낌도 든다.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직역하면 ‘국민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니, 아마도 ‘生’은 우리글에서 어떤 경우에라도 ‘생’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강조됐던 것으로 믿어진다.

중국의 한자는 잘 아는 바와 같이 상형문자인데, 진시황제가 통일한 7개 국가는 각각 그들만의 문자를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통일 전 춘추전국시대는 500여년이란 긴 기간이었으며, 따라서 각 나라가 나름대로의 문자와 어휘, 발음 방식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나라들을 무력으로 평정한 진시황제는 분서(焚書)라는 방식을 통해 그들의 언어와 문자를 통일했다(이에 따르지 않는 자는 일족을 멸했다). 통일된 언어와 문자를 갖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임을 생각하면 세종대왕의 한글은 하늘이 이 땅에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이다.

적어도 몇 천자는 깨우쳐야 뜻이 통하는 한자이기에 중국에서도 이를 한글이나 영어처럼 표음문자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마오쩌둥은 1958년에 중국어의 알파벳 표기법을 제정했는데 발음이 지역에 따라 다른 이유 등으로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어려운 아랍글자를 쓰던 터키는 1930년대에 이르러 서양의 알파벳을 도입했고 한자를 쓰던 베트남도 역시 그들의 언어를 알파벳을 이용해 표기하고 있다. 한글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어쩌면 ‘山’을 ‘산’이 아니라 ‘San’으로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큰 문제는 분단 상황이 70년에 이르면서 남북 사이에 말과 글이 이미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미래에 아주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통일을 대비해서는 여러 분야에서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겠지만 특히 한글을 더욱 발전시키고 온 민족이 같은 언어를 구사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1월15일을 ‘조선글날’로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10월9일과 1월15일, 서로가 이만큼 달라진 현실이 안타깝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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