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포스터. 인도 동물원의 여러 동물을 싣고 미국으로 항해하던 화물선이 풍랑을 만나 침몰하고 만다. 가까스로 소년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 둘 만 좁은 구명보트에 살아남는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포스터. 인도 동물원의 여러 동물을 싣고 미국으로 항해하던 화물선이 풍랑을 만나 침몰하고 만다. 가까스로 소년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 둘 만 좁은 구명보트에 살아남는다.
[ 김민성 기자 ] 이안 감독의 2012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아름답고도 처절한 생존기다. 침몰하는 화물선을 필사적으로 탈출해 좁은 구명보트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는 소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단 둘 뿐이었다.

굶주린 맹수와의 비참한 표류. 파이가 그 혹독함을 버틴 건 긴장감 때문이었다. 배고픔과 맹수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망만 다니던 파이는 생각을 고쳐먹는다. 피하고 공격하는 대신 공생을 선택한다. 굶주린 맹수에게 생선을 낚아먹인다. 리처드 파커도 어느 새 파이의 무릎을 배고 신음한다. 때론 싸우고, 때론 의지하며 기적처럼 육지에 닿는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파이는 리처드 파커에게 뒤늦은 작별인사를 건넨다.

"구해줘서 고마워. 널 영원히 잊지 않을거야."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 라이프 오브 삼성&애플…모바일 대전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삼성전자와 애플이 연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들은 자사를 대표하는 6세대 스마트폰 갤럭시S6와 아이폰6까지 치열한 라이벌전을 펼치고 있다. 전세계 모바일 산업 시장을 이야기할 때 이 두 기업을 빼놓고 따질만한 이야기도 마땅히 없다. '영원한 맞수'라는 수식어도 식상하다.

각각 안드로이드와 아이오에스(iOS)라는 양대 운영체제와 서비스 플랫폼에 제국을 건설하고, 갤럭시와 아이(i) 시리즈 신무기로 서로를 공격·방어하는 앙숙처럼 보인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좁은 구명보트를 차지하기 위해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맹렬히 싸우고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좁은 구명보트를 차지하기 위해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맹렬히 싸우고 있다.
탄생한 국가도, 조직 문화도, 제품을 제조하는 방식도,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도 판이하게 달랐다. 이기기 위해서는 철처히 달라야했고, 또 공격해야 했다.

2008년 이후 전자산업 역사 그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모바일 광풍이 21세기를 강타하면서 이들의 싸움은 더 격화됐다. 누구나 좋아할 제품을 만들고 많이 팔아 시장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게 지상 과제였고,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한정된 시장을 두고 무한 투쟁하던 두 제국은 결국 '세기의 소송'이라고 불린 특허전까지 벌인다. 애플이 먼저 안드로이드측에 핵전쟁을 선포했다. 안드로이드를 창조한 구글과 대표적 제조사인 삼성전자를 동시에 겨냥했다. 구글이 자사 운영체제인 iOS와 아이폰 기술력을 무수히 훔쳐 안드로이드를 '출산'했다며 이를 갈았다.

엎친데 덮친격. 스마트폰 매출 점유율 1위였던 애플은 삼성전자에 그 왕좌까지 빼앗겼다. 2011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안드로이드 성장세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애플을 무너뜨리고 갤럭시의 깃발을 모바일 시장에 꽂는다. 급기야 2013년 전세계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78.9%까지 치솟았고, 이 중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65%를 차지했다.

반면 iOS와 아이폰은 추락 중이었다.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9.2%. 자존심의 마지노선 10% 방어벽은 힘없이 허물어졌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참을 수 없었다. "애플이 가진 은행 잔고 4000억 달러의 마지막 1페니까지 털어서 핵전쟁에 이기겠다"고 선언했다. 천문학적 배상금을 걸고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에 돌입했다. 스마트폰 점유율 1위 삼성전자를 '카피캣(표절 기업)'으로 낙인 찍으려했다. 삼성은 자사 무선통신 기술을 애플이 무단 도용했다며 맞대응했다.

돈 문제가 아니었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적을 베어야 내가 사는 생존 싸움어었다.

◆ 침몰하는 모바일船…고난의 시작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배고픔과 맹수의 위협 속에서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파이는 다시 거대한 풍랑을 만난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배고픔과 맹수의 위협 속에서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파이는 다시 거대한 풍랑을 만난다.
2013년 전 세계 전자업계는 스마트폰 수요 포화 공포 속으로 빠져든다. 아이폰 혁명 이후 3~4년간 폭발적으로 압축 성장한 스마트폰 시장도 피로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전세계 휴대폰 보급률은 70%를 넘어 추가 판로를 찾기 힘들었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위축되자 고가 스마트폰 시장은 더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수년간 애플과 삼성전자를 살찌운 '캐시 카우'가 시름시름 앓을 때, 양사는 국내·외 곳곳에서 특허전을 벌이며 상대에 피멍을 내고 있었다.

특허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애플과 삼성전자가 상대 구석구석을 뜯어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전 세계 스마트폰 10대 중 8대가 안드로이드일만큼 영향력이 큰 건, 그만큼 배울 점도 많다는 것을 애플은 깨달았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였다. 혁신을 향한 애플의 집념, 완벽에 가까운 기술력과 디자인, 고객을 감동시키고 생태계를 확장하는 마케팅(잡스는 브랜딩과 마케팅이라는 용어를 극히 혐오했다고 하지만). 삼성전자가 늘 갈구했지만 가지지 못한 결핍 영역이었다.

2014년 8월 이들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미국을 제외한 8개 나라에서 수년간 진행해온 모든 특허 소송을 철회한다는 내용이었다. 3년 4개월만에 나온 평화 협정이었다.

기나긴 싸움은 이들이 상대 진영을 결코 쉽게 괴멸시킬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소비자는 독재가 아닌 다양성을 원하기 때문이다.

# [시선+] '라이프 오브 파이'…삼성&애플의 '공생' <하> 편으로 이어집니다.



글·편집= 김민성 한경닷컴 기자 mean@hankyung.com @mean_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