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소득중심 성장이란 곁눈질은 거둬야
국민소득 1인당 82달러에서 1636달러로 약 20배 성장. 박정희 대통령 당시의 경제성적표다.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과 아닌가. 당시 경제정책은 핵심 산업으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 외자 도입을 통해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며 국토를 개발하는 등 성장 교과서와도 같았다. 그 덕에 우리 국민의 지갑도 20배 두꺼워졌다.

최근 정부와 노동계가 임금근로자의 지갑을 채워 내수를 살리겠다고 한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얼마 전 강연에서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한편, 정부도 업종별 생산성 지표가 좋아지면 임금 인상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인과관계가 기존에 많은 이들이 생각하던 것과 반대다. 워낙 침체해 있는 내수를 볼 땐 이해가 가는 면도 있지만, 효과 없이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고민하는 시점에 이번 방침이 경제에 비효율만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금도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현저히 낮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한국 노동생산성은 일본의 74%, 영국의 63%, 프랑스와 독일의 54%, 미국의 46% 수준이다. 반면 임금수준의 증가속도는 생산성 증가속도를 웃돈다.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연평균 실질임금증가율 순위를 매겨본 결과, 한국은 해가 갈수록 상위권으로 올라가고 있다. 2009년에 OECD 국가 중 22위였는데 2012년에는 7위를 기록했다. 또 2000년 시간당 임금수준을 100으로 볼 때, 2011년 한국의 임금수준은 223.5까지 올랐다. 미국 146.2, 일본 134.4, 경쟁국인 싱가포르 173.7, 대만 143.3보다 가파르다는 점에서 임금소득을 무리하게 끌어올리다가는 노동생산성에서 경쟁국들에 크게 뒤처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임금근로자 등의 소득을 늘린다 한들 내수가 과연 살아날까도 의문이다. 소비패턴이 구조적으로 변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연령대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소비지출을 자제하고 있다. 2006년에서 2013년 사이에 가계 경상소득은 36% 증가한 반면, 소비지출은 22% 증가에 그쳤다. 같은 기간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보험지출은 127% 증가했다. 또 다른 소비 패턴의 변화는 ‘어디에서 소비를 하는가’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0년간 가계소비지출을 보면 국내에서 소비한 돈은 2003년 약 500조원에서 2013년 638조원으로 28%가량 는 반면, 같은 기간 해외관광으로 외국에 나가서 쓴 돈은 약 13조원에서 22조원으로 70% 늘었다. 상황이 이런데 내수가 얼마나 살아날 수 있을까.

무리하게 끌어올린 인건비가 나중에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자산 기준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약 83%가 ‘구조적 장기불황’을 걱정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적어지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을 강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임금은 한번 올리면 내릴 수 없는 하방경직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몇 해 전,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라는 한 은행의 광고문구가 히트를 쳤다. 왜 사람들은 이 광고에 귀를 기울였을까. 메시지가 심플하고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득 중심 성장론을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소득분배만 강조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경제가 안 되기 때문에 소득이 줄어든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지금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경제에 혈액순환을 돕는 노동시장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이란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4대 부문은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정부가 다른 데 눈을 팔지 말고 경제정책에 정도(正道)를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태신 <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kwontaeshin@ke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