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바른 이름 붙이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나오는 가상국 오세아니아의 4개 부처 이름이 걸작이다. 평화부는 전쟁을 관장하는 부처이고 애정부는 사상 범죄를 관리하는 부처다. 풍요부는 배급량 감소만을 발표하는 부처이며 진리부는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조작하는 부처다. 신어(Newspeak)를 만들고 언어를 조작하는 일을 맡은 학자 사임(Syme)은 주인공 스미스에게 “언어가 완성될 때 혁명이 완수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체주의 특성이 바로 언어의 의미가 극도로 왜곡되고 통제되는 것임을 오웰은 이 소설에서 이미 역설하고 있다.

언어가 사고를 좌우하고 개념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관점은 비트겐슈타인이나 하이데거 가다머 등 수많은 서양 철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이다. 누구보다도 공자(孔子)가 이름과 실재가 일치하지 않을 때 초래하는 세상의 혼란을 경고하면서 정명론(正名論)을 강조했다.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우선 이름을 바로잡겠다고까지 했다. 정명론이 공자의 핵심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정작 한국어에서 정명은 깜깜이다. 무엇보다 19세기 일본에서 서양문명을 접할 때 번역했던 단어들이 그대로 직수입돼 쓰이고 있어 혼란을 부채질한다. 일본 철학자 니시 아마네(西周)가 ‘데모크라시(democracy)’를 ‘민주주의’로 번역한 게 과연 타당한지는 아직 논란이다. ‘우파’와 ‘좌파’가 그냥 ‘보수’와 ‘진보’로 쓰이고 있고 ‘해외(海外)’나 ‘반도(半島)’등 한국에는 맞지 않은 단어들이 그대로 사용된다.

법학용어나 공학용어는 아예 일본식 한자 투성이다. 국내 민법에선 일본 민법 용어를 그대로 차용하는 어휘가 60%에 이른다는 연구도 있다. 이러다간 오웰이 1984에서 예견했듯이 사고와 언어가 완전히 모순된 전체주의 사회로 변해갈지 걱정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어제 ‘바른 용어(正名)를 통한 사회통합 모색’을 주제로 2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선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대신 ‘경제적 평등의 추구’, ‘복지 수요’는 ‘복지 욕구’, ‘복지 투자’는 ‘복지 지출’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5월 1차 토론회에선 ‘자본주의’를 ‘시장경제’, ‘과당경쟁’을 ‘시장경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업의 사회공헌’, ‘재벌’을 ‘대기업집단’ 등으로 쓰자고 제안했던 후속 토론회다. 하지만 이들의 외침은 그냥 메아리로만 사라지고 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언론과 정부 당국의 각성이 필요한 때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