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왕좌 놓고 하이브·카카오 전쟁 시작은…라이크기획서 3.0까지

20여년전 세운 이수만 개인회사의 용역비에서 촉발…가처분 결과 등 변곡점
이성수 현 SM 대표 '백의종군' 선언…가요계 "글로벌 스탠더드 부합 노력해야"

K팝 대표 연예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왕좌를 놓고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하이브와 'IT 공룡' 카카오 간 전쟁이 격화할 조짐을 보인다. 20여년전 SM 설립자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 '라이크기획'에서 출발한 불씨가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 등의 문제 제기를 도화선 삼아 K팝 시장을 뒤흔드는 메가톤급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 섣불리 점치기 어려운 가운데 가요계 안팎에서는 이수만이 제기한 카카오에 대한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결과와 SM 현 경영진이 조만간 발표할 새로운 비전 등에 주목하고 있다.

가요계에서는 무엇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K팝이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기획사들의 경영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라이크기획 파고든 얼라인…현 경영진 이수만에 등 돌려
19일 가요계에 따르면 이번 SM 경영권 분쟁의 뿌리로 꼽히는 라이크기획은 2000년 코스닥 상장을 앞둔 SM 증권신고서에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다.

SM은 당시 라이크기획에 대해 "SM 소속 가수의 음악 자문과 프로듀싱 업무를 담당하고 음반 매출액의 15%를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듀싱 업무란 이수만의 축적된 경험에 따른 노하우와 IT·문화·가상세계를 아우른 선견지명에 기반한 자문 등으로 알려졌다. 이수만은 H.O.T.와 S.E.S. 등 1세대 아이돌 시대부터 출발해 지난해 연말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SM으로부터 라이크기획을 통해 프로듀싱 명목의 용역비를 받았다.

매출 대비 수수료는 15%에서 출발해 도중 6%로 변경됐다.

2021년 기준 이수만이 라이크기획을 통해 가져간 액수는 240억원에 달했는데, 이는 그해 연간 영업이익의 약 3분의 1이었다.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 2019년 6월로, 당시 지분 7.59%를 보유한 KB자산운용이 주주 서한을 통해 라이크기획 합병과 배당 등을 요청했다.

그러나 SM은 당시 이에 대해 별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약 2년 반 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이 전면에 나서고부터 상황은 반전됐다.

약 1% 지분을 가지고 소액 주주를 대변한 이들은 SM을 전방위로 압박하며 지난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측(이수만 측) 후보가 아닌 자신이 낸 후보를 감사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27년간 유지된 철옹성 같은 '이수만 왕국'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얼라인은 이 기세를 몰아 작년 내내 SM을 상대로 라이크기획 문제 개선안과 프로듀싱 개편안 등을 요구했고 결국 경영진으로부터 사실상 '백기 투항'을 받아냈다.

SM은 지난해 연말 부로 라이크기획과의 계획을 종료했고, 지난달에는 이사회 과반을 사외이사로 채우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2020년 취임 이래 이수만을 엄호해 온 처조카 이성수 공동대표는 2023년 새해 들어 태도를 180도 바꿔 회사 개혁의 선봉에 나섰다.

가요계에서는 그 계기로 얼라인이 지난달 15일 SM에 보낸 소 제기 청구를 주목한다.

얼라인은 당시 이수만을 비롯해 라이크기획 문제를 수수방관한 전 경영진 6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라고 SM에 요구했는데, 정작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이사 등 현 경영진은 빠졌기 때문이다.

가요계에서는 이 시기에 즈음해 이성수 대표가 이수만에게 등을 돌리고 얼라인과 함께 회사 체제에 '칼'을 댔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이달 3일 음반 제작에서 이수만을 배제하는 'SM 3.0'을 발표했고, 이달 7일에는 카카오가 지분 9.05%로 2대 주주에 올라서도록 하는 유상증자·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해 이수만과의 대립각을 선명히 했다.
지난 2년간 지분 18.46%를 매각할 곳을 두고 장고를 거듭한 이수만으로서는 자신의 지분 희석에 대응하고자 곧바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리고 이달 10일 카카오가 아닌 경쟁사 하이브에 SM 지분 14.8%를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미 국내 1위 기획사이던 하이브가 SM 인수를 공식화하자 SM 경영권 분쟁은 '이수만·하이브' 대 'SM 현 경영진·얼라인·카카오'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번졌다.

또 이 분쟁을 둘러싸고 가수 겸 배우 김민종, 작곡가 유영진, 한국연예제작자협회, SM 평직원 협의체 등이 잇따라 입장을 내놓으며 여론전에 불을 붙였다.

1대 주주에 오르게 된 하이브의 '필승 전략'은 주당 12만원에 SM 주식 공개매수였지만, 갈등이 첨예화하면서 SM 주가는 공개매수가를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하이브는 변호사·회계사 등으로 이뤄진 SM 새 경영진 후보와 야심 찬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놨지만, 이성수 대표가 이수만의 역외탈세 의혹과 에스파 컴백 지연의 속사정을 담은 유튜브 폭로전을 개시하면서 인수전은 감정싸움을 동반한 진흙탕 소모전으로 변질했다.

이성수 대표는 유튜브 영상에서 "대표이사라는 직책에 따르는 권한이 주어졌음에도 이수만 선생님의 탐욕과 독재를 제가 막지 못했다"며 "나는 처조카 대표이사가 맞고, 착한 아이도 맞다.

그리고 잘못한 것도 맞다.

하지만 더 큰 잘못을 막고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 가처분 향배·이성수의 새 비전이 변곡점…"글로벌 스탠더드 부합해야"
가요계에서는 이번 인수전의 승패를 가를 첫 번째 터닝포인트로 다음 달 초 결론이 날 가처분 관련 법원 결정을 주목한다.

법원이 이수만의 손을 들어주면 카카오의 SM 주식 취득에 급제동이 걸려 하이브로서는 경영권 획득이 수월해진다.

그러나 법원이 SM 현 경영진의 손을 들어준다면 다음 달 말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치열한 표 대결을 피할 수 없다.

하이브는 이미 새 이사 후보와 지배구조개선안을 발표하는 등 대부분의 '패'를 공개한 상황이다.

반면 SM은 이성수 현 대표이사만 연임 포기 및 백의종군을 선언했을 뿐 사내이사 3명 가운데 탁영준 현 공동대표이사와 박준영 이사의 거취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를 비롯한 현 SM 사내이사의 임기는 모두 다음 달까지다.

SM은 기타비상무이사로는 '우군'인 얼라인 이창환 대표를 추천하겠다고 일찌감치 밝힌 상태다.
SM 현 경영진 측 임시사외이사추천위원회는 최근 직능별로 전문성 있는 사외이사 후보 3명을 추려 SM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요계에서는 사내이사 후보로 카카오 측 인사가 포함될지 여부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SM 관계자는 나머지 사내이사의 거취 등을 두고 "계속 논의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SM 현 경영진은 이번 주 중 카카오 투자와 연계된 새로운 비전 발표도 앞두고 있다.

이 비전 발표에는 SM의 프로듀싱 개편안인 'SM 3.0'과 더불어 '이수만 없는 SM'의 구체적인 청사진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성수 대표의 유튜브 폭로도 계속될 전망이어서 치열한 여론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지금 이 상황을 보며 모두가 느끼는 것은 SM이 지금까지 문제가 참 많았다는 것"이라며 "이 대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K팝 산업이 구호로는 '휴머니티'와 '지속가능성' 같은 거창한 것을 내걸었지만 경영 방식은 굉장히 원시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과거의 막무가내 경영이나 인수합병을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해결하고자 모두가 노력을 기울이고 글로벌 스탠더드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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