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일본 정부 압박…오히려 '소녀상' 전시장은 인산인해였다

아이치트리엔날레 기획전 첫 주말…철거 가능성에 "빨리 보러가자"
시민들, 소녀상 경쟁적 촬영하며 큰 관심…우익 현장 공격은 없어도 긴장감 고조
깡총한 단발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소녀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다.자신의 차례가 오자, 사람들은 소녀 옆에 놓인 빈 의자에 앉아 소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친구에게 촬영을 청한 고등학생 사다에 군은 "그 옆에 앉으면 어떠한 느낌일지 궁금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막상 앉고 보니 굉장히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옆에 선 친구 야마모토 군은 "한국과 일본의 우호적인 교류를 위해 언론이 노력해달라"고 말을 보탰다.아이치(愛知)현 일대에서 열리는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가 개막 첫 주말을 맞은 3일, '평화의 소녀상'이 놓인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 전시장은 인파로 크게 붐볐다.

김운성·김서경 작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고자 제작한 소녀상은 그동안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현대 미술품을 모은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출품작 중 하나다.

일본 공공미술관에 처음 전시된 사례다.전날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가와무라 다카시(河村隆之) 나고야시 시장이 연이어 전시를 문제 삼고, 우익 성향 누리꾼들이 열성적으로 뉴스를 퍼 나르면서 소녀상은 일본 온라인을 크게 달궜다.

개막 사흘째인 이날 찾은 20평 남짓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장은 서로 어깨를 조심해야 할 정도로 관람객으로 들어찼다.

주최 측은 여러 겹 대기 줄을 만들었으나, 오후가 되자 그마저도 모자랄 정도로 사람이 크게 늘었다.
전시 준비에 참여한 출판인 겸 시민운동가 오카모토 유카(岡本有佳)는 "아무래도 소녀상 철거 가능성을 언급하는 기사가 많으니 많이들 보러 온 것 같다"라고 전했다.

오카모토와 인터뷰하는 중간에도 나이 지긋한 한 남성이 전시공간 위치를 물으며 "(소녀상이) 없어진다고 하는 데 빨리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꽤 오랫동안 전시장에 머무르며 소녀상을 감상했다.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 경쟁적으로 촬영하고, 작품 캡션뿐 아니라 수요시위 1천 회를 기념하는 평화비 글귀를 뜯어보는 이도 자주 눈에 띄었다.

아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나고야 거주 40대 일본인 주부는 "솔직히 말해 소녀상을 본 뒤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은 없었다"라면서 "예술 작품을 철거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냥 전시를 보러왔을 뿐 소녀상은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 50대 여성 작가처럼 소녀상 자체를 처음 접하거나,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우려와 달리 전시장 안팎에서 소녀상을 향해 눈에 띄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시민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전날부터 일본 정부발 '철거'라는 단어가 안팎에 공유되면서 전시장 내 긴장감은 한층 고조된 상황이다.

이날도 사무실에는 "공금(세금)으로 왜 그러한 전시를 하느냐"는 식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중이라고 스태프는 전했다.

이날 소녀상과 안세홍 사진가의 위안부 작업 주변에 보안 요원과 스태프가 집중 배치됐다.

주최 측은 전시장 내 인터뷰로 보이는 움직임은 곧바로 제지했고, 관람객에게는 촬영 이미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전시장 밖에서 인터뷰에 응한 다수도 익명 보도임을 전제로 입을 열었다.한 재일 동포는 "나고야 시에서는 매일 우익들이 대일본 제국을 지켜야 한다는 등의 문구를 붙인 차를 몰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정도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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