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고령사회의 덫'…가족 붕괴시키는 '치매 간병 살인'

'숨겨진 환자' 치매 간병 가족
간병 길어지거나 회복 힘들고 생활고 시달리며 '극단적 선택'

고령화 사회…환자 갈수록 늘어
가족들 '간병 시간' 큰 부담 느껴
사회생활 줄이고 직장 관두기도

정부 '국가치매책임제' 도입…의료비, 건보 부담 확대 검토
지난달 29일 새벽 6시30분. 서울 송파경찰서를 찾은 채모씨(55)는 대뜸 “자수하겠다”며 두 손을 내밀었다. 채씨는 1년여 전 어느 봄날 새벽 서울 방화동 자택에서 술을 마신 뒤 어머니 장모씨(78)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살해했다. 장씨는 중증 치매 환자였다. 수년간 노모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수발을 들었던 채씨는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욱하는 마음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홀로 어머니를 모신 탓에 장씨가 숨진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고시원을 전전하던 그가 1년2개월이 지나 경찰서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어머니를 좋은 곳에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싶어요.”

스트레스 극심한 보호자는 ‘숨겨진 환자’
고령화에 따라 치매 환자가 늘면서 ‘간병 살인’이나 ‘간병 자살’ 등 관련 범죄가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은 지난해 말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13.2%로 유엔이 정한 고령화사회(7% 이상)로 분류된다. 지속적인 노인 인구 증가로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20% 이상)에 진입할 전망이다. ‘황혼의 덫’으로 불리는 치매 환자도 크게 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치매 환자는 고령 인구 662만 명 가운데 9.8%(64만8000 명)로 추산된다. 이 비중은 △2020년 10.4% △2050년 15.1%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병원 측은 예상했다.이는 곧 간병 가족의 부담과 직결된다. 김희진 한양대 의대 교수팀의 ‘치매 환자 보호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 가족이 가장 큰 부담으로 꼽는 것은 ‘간병 시간’이다. 전체 응답자(100명)의 절반은 3년 이상 환자를 돌봤으며 이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환자 곁에서 보낸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부담은 일반적으로 가족 구성원 중 어느 한 명에게 오롯이 전가되는 게 보통이다. 치매 증세가 심해질수록 간병 시간이 늘어나지만 이를 가족 간에 분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도 상당수다. 응답자의 27%는 퇴사, 51%는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은 사회관계가 끊기거나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치매 환자 가족을 ‘숨겨진 환자’라 부르는 이유다.
고령사회가 맞닥뜨린 불편한 진실
치매간병 범죄는 바로 이 숨겨진 환자에 의해 일어난다. 범죄는 크게 △간병 살해 △환자 살해 후 자살 △간병인 자살 세 가지로 나뉜다. 채씨의 사례가 첫 번째에 속한다. 주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철호 남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간병 기간이 길어지거나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희박할 때, 생활고나 간병비 부담이 늘어날 때 범행 확률이 높다”고 진단했다.

환자를 살해한 뒤 자살하는 사례도 있다. 범행 후 자살(시도)은 존속 살해의 특징이다. 2014년 1월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 씨의 아버지 박모씨가 치매를 앓는 부모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박씨는 15년간 치매 환자인 부모를 간병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생활고에 우울증까지 겹쳤다. 현장에서는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간다”는 유서가 발견됐다.배우자가 치매 환자를 보살피는 ‘노노(老老) 간병’에서는 동반자살 가능성이 높다. 2014년 8월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치매를 앓던 A씨는 경찰에 자신의 남편이 죽었다고 신고했다. 남편 역시 치매 환자였다. A씨는 남편의 용변을 처리하다가 “힘들지 않나. 나도 힘들다”며 함께 죽자고 제안했다. 번개탄을 피우고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남편만 사망했다. 경찰은 A씨를 자살교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는 우리에 앞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도 일찌감치 사회 문제로 비화됐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2007~2014년 일본에서 일어난 간병 중 살인·살인미수사건은 371건이다. 1주일에 한 번꼴이다. 김원경 일본복지대 지역케어연구추진센터 연구원은 “환자의 폭언, 생활고 등으로 스트레스가 폭발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가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충격 역시 간병인에게 견디기 힘든 칼날이 된다”고 설명했다.

치매, 가족을 넘어 ‘국가 문제’로 인식해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간병 범죄를 막기 위해 정확한 현황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경찰청은 치매를 포함한 간병으로 인한 살인·자살 등 범죄 통계조차 작성하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통계는 없지만 각종 사례 분석에서 간병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 등이 간병 범죄의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이 2013년 정부에서 치매 환자를 책임지는 ‘오렌지 플랜’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진단에서다. 가족이 매달 일정 금액(13만~43만원)을 내면 전문 간병인이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시스템이다. 스웨덴 역시 1996년부터 치매 전문 간호사를 매년 7000~1만 명씩 양성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 3일 ‘국가 치매책임제’를 내놨다.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의 부담을 줄이면 관련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국적으로 47개에 불과한 치매지원센터를 250개 이상으로 늘리고, 치매책임병원을 지정할 계획이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요양보호사도 대폭 확충하기로 했다. 또한 치매 의료비의 90%까지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재 건강보험 보장률은 80%로 환자 본인이 20%를 부담해야 한다.대부분의 간병 범죄가 존속 범죄라는 면에서 한국 특유의 가족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철호 교수는 “노후를 자식에게 기대는 관행에다 부양 책임이 특정 자식에게 쏠리는 가부장적 문화 등이 존속 살해라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며 “치매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때 끔찍한 범죄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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