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구실은 ‘통곡의 방’이라고 불린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날씨에 상관없이 내 연구실은 학생들이 흘린 눈물로 늘 우기(雨期)다. 누군가는 가랑비가 되어 흩뿌리고, 누군가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되어 내리퍼붓는다. 한번은 옆방 교수님이 찾아왔다가 화들짝 놀라 문을 급히 닫고 가버린 적도 있다. 노크하고 연구실 문을 열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동해보다 수심이 더 깊은 눈물바다였던 것이다.

사실 ‘통곡의 방’이라는 이름은 내가 지은 거다. 내 연구실을 ‘통곡의 방’이라고 제일 먼저 부른 것도 나다. 한 마디로 소문의 근원지는 바로 나 자신이다.

골든타임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학년 학생이 연구실로 나를 찾아왔다.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찾아왔기에 졸업 인사를 하러 왔나 싶었다. 하지만 나의 안일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학생은 울기 시작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도 취업을 하겠다는 희망도 없었다. 그 아이에게는 졸업을 앞두고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만 남아 있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벼랑 끝에서 보내는 그 아이의 구조 신호에 나는 응답할 수 없었다. 이제 곧 졸업이었다.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오늘부터 내 연구실은 ‘통곡의 방’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이 유대인의 성지이자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것처럼 내 연구실을 학생들이 자주 찾는, 찾고 싶어 하는 ‘핫플레이스’로 만들리라. 청담동 카페 부럽지 않게 명품 커피잔 세트와 다양한 티를 갖춰놓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요.” (마태복음 5장 3절) 그렇게 나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의 ‘갓’민정샘, 또 한 명의 ‘오은영 박사님’이 되었다.

천년의 그리움

통곡의 방에서 통곡하는 학생은 이제 거의 없다. 눈물샘이 터지기 전, 그러니까 골든타임이 지나가기 전에 우리는 만나서 슬기로운 처방전을 함께 써 내려간다. 학생들의 긴급 SOS가 있으면 ‘통곡의 방’은 언제든 장소를 옮겨 다니며 오픈한다. 방학도 공휴일도 연구실도 스타벅스도.

나의 ‘떴다 방’ 행보를 잘 아는 지인 교수님들은 학생에게 너무 정 주지 마라, 그러다가 상처받는다고 조언을 하기도 하고, 학생 상담을 줄이고 연구에 집중하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고 충고하기도 한다. 맞다. 나는 나를 인터넷 포탈쯤으로 대하며 요구사항만 늘어놓는 무례한 학생에게 상처를 받아 몸져눕기도 한다. 맞다. 나는 세계적인 연구자,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나의 이름을 드높이고도 싶다.

그런데, 그런데, 자꾸 학생들이 눈에 밟힌다. 20살 신입생 시절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짧으면 4년, 길면 5~6년이란 기간 동안 지켜봐 온 아이들이다. 학생들이 보낸 대학 생활의 모든 시간 속에 내가 함께 있다. 학생들의 희로애락이 곧 나의 희로애락이다. 맞다. 나는 아이들을 배도 아니고, 가슴도 아니고, ‘눈’으로 낳았다. 내가 눈으로 낳은 아이들이 바로 내 학생들이다.
만약 네가 나처럼 누군가를 오랫동안 지켜봤다면
고작 몇 년의 세월도 이렇게 정이 깊어지는데, 천 년 동안 한결같이 한 사람만을 지켜보아 왔다면 어떨까. <삼천아살: 천년의 그리움>는 2020년 중국 망고 TV에서 방영된 중국 드라마로, 려국의 공주 소천과 그녀를 사랑한 신선 부구운의 로맨스를 그린 선협극이다. 부구운은 천 년 동안 인간 여자 소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그녀를 향한 순애보를 혼자 간직한 채 살아간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지켜봤다면

극중 려국이 요괴의 침략에 의해 멸망하고 소천의 부모님이 모두 살해당하면서 소천의 인생은 180도 바뀐다. 분노에 사로잡힌 소천은 요괴를 모조리 없애기 위해 영등의 불을 밝히고자 고군분투한다. 복수심에 불타는 소천의 목표는 오직 영등뿐. 그런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부구운. 그는 영등의 심지인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 사랑하는 소천의 복수를 돕고 요괴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만약 네가 나처럼 누군가를 오랫동안 지켜봤다면 지금 내 마음을 알 거야. 난 진심으로 네가 행복해지면 좋겠어. 날마다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가지 말고 천진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걱정이나 근심 없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가슴 한켠이 따뜻해진다. 한낱 미물인 나의 마음도 이렇게 애틋할진대 신의 마음은 어떠할까. 갑자기 든든한 뒷배가 생긴 것처럼 가슴이 활짝 펴지는 기분이다. 사랑은 희생과 헌신의 다른 말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편지가 되길 바란다. 세상의 민폐가 되는 것 같아 두렵다는 너를 향한 천년의 애틋함을 담은,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편지. M아, 난 진심으로 네가 행복해지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