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살리고 싶다면 지원을 줄여라" [책마을]
60년 전, 가난했던 한국을 살린 건 선진국이 내민 '도움의 손길'이었다. 이들이 내어준 원조금은 전쟁통에 파괴된 다리와 공장을 새로 짓고, 아이들을 먹일 음식을 사는 데 쓰였다. '한강의 기적'은 이런 국제 원조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한국처럼 국제 원조를 받고도 가난에서 못 벗어난 곳이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이곳에선 빈곤과 기아가 일상이다. 삐쩍 마른 몸의 아이와 노인들은 당장 오늘 끼니를 걱정하고,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살아남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도대체 무엇이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운명을 가른 걸까. 경제학자 로버트 칼데리시가 내놓은 답은 '정부'다. 해외에서 돈이 들어오면 어떤 정책에 먼저 쓸 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엔 이런 정부가 거의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선진국이 준 돈은 독재자, 정치인, 행정가들의 금고만 불릴 뿐이었다.

칼데리시가 쓴 책 '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는 이처럼 아프리카 국가들이 수십 년간 국제 원조를 받고도 '제자리 걸음'인 이유를 분석한다. 그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아프리카 전문가'로 꼽힌다. 세계 최대 원조기구인 세계은행에서 아프리카 대변인과 탄자니아·코트니부아르 지부장을 맡았다. 실제 아프리카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곳에 만연한 독재정치, 잘못된 정치적·행정적 관행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아프리카가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직접적 원조를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빈민국을 살리려면 돈을 적게 줘야 한다니, 언뜻 들으면 이상한 제언이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글로벌 원조 예산이 줄어들면 소수의 국가들에게만 돈이 돌아간다. 당연히 원조 조건은 엄격해질 것이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그 구멍을 뚫기 위해 스스로 발전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특히 원조 조건에 '공정한 선거와 공개적인 정치토론'을 넣으면 아프리카의 뿌리 깊은 정치적 부패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실 이 책은 2006년 나왔다. 그래서 지금의 사례와 정보를 원하는 독자들은 "옛날 사례 아니냐"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와 지금의 아프리카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무겁고 딱딱한 주제지만, 자신이 실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듯 쓴 덕분에 술술 읽힌다. 칼데리시가 겪은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프리카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이 머릿속에 정리된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