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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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미약(心神微弱). 우리는 대게 이 단어를 보고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 쉽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공황장애, 조현병, 우울증, 음주 등을 이유로 감형받는 사례를 적잖이 봐와서다. 도대체 심신미약이 무엇이기에 이를 판단하고 형을 줄여주는 제도가 사회에 필요한 것일까. 또 진실로 마음이나 정신 장애를 지닌 사람과 죗값을 줄이기 위해 거짓말하는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일까.

신간 ‘법정으로 간 정신과 의사’는 5년간 국립병무병원(치료감호소)에서 근무하며 230건 이상의 정신감정을 맡아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심신미약을 둘러싼 이러한 물음에 답을 내놓는 책이다. 형사법은 피의자의 의도를 중시한다. 사람을 죽였더라도 일부러 계획적으로 죽인 것과 실수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처벌 수위가 다르다. 심신미약은 피의자가 고의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근거가 된다.

책에서 저자는 실제 정신감정 사례들을 들어 심신미약이 법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상세히 전한다. 가장 먼저 설명하는 것은 심신미약 판정에 대한 오해다. 흔히 사람들은 조현병에 걸렸거나, 음주로 인해 이성적 판단에 어려운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심신미약으로 처리돼 감형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현병 환자라 하더라도 사건을 일으킨 시점에 조현병 증상이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명확해야만 심신미약으로 판단될 수 있다.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엔 정신감정 결과가 심신미약일 수도 심신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엔 심신미약 판정이 나오더라도 감형이 이뤄지는 사례는 쉬이 찾아보기 어렵다. 음주 관련 범죄에 대한 판사들의 판단이 엄격해지면서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심신미약 판정이라 함은 감형을 의미했으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법 제도는 개선됐다. 2008년 미성년자를 강간했음에도 술을 먹었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으로 판단돼 형을 감경받은 ‘조두순 사건’ 이후 성폭력특별법에 아동성폭력 범죄의 경우 음주나 약물에 따른 심신미약이라면 감경하지 않도록 하는 부칙이 생겨났다. 2018년 발생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이후에는 일반 범죄에 대한 심신미약 의무 감경도 폐지됐다.

저자는 정신감정이 범죄자의 감형이나 회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제도를 통해 치료 기회를 놓쳤던 누군가의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사회 안전망을 더 단단히 구축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말한다. “정신감정은 나쁜 사람과 아픈 사람을 구분하는 시작점이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볼 수 없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