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파고들어 와 있을까? 아마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예술이 음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암막 속에서 나와 소리와 함께 첫 감각을 깨우고 그 파동으로 삶의 첫 형태를 더듬어 나가는 상상을 하곤한다. 각자가 마음의 진동을 느끼는 음악의 형식은 다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공기를 가로질러오는 그 파동에 전율한다.

팝스타를 예로 들어보자, 스타란 무엇인가? 단순한 외형만으로는 스타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우리를 찌릿찌릿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앗아가 우리를 그들의 추종자로 만들어야 한다. 노래를 비롯해 다양한 것을 아우르는 울림이 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따라하고 싶은 것을 창조하고, 이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야 한다.
프랑스 파리의 바스키아들
< S-A-M-O, 그는 모든 벽에 있죠, 특히 여기, ‘빌리지’에서는 더욱요 > Canal party

필하모니 드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Basquiat Soundtracks 전시는 바스키아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준 다양한 음악의 카테고리를 그가 했던 활동과 엮어보여주며, 그런 그가 왜 스타일 수 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몸 전체에 퍼지는 진동과 그가 활동했던 뉴욕 지도, 그를 둘러쌌던 미디어와 사람들을 시작으로 우리는 그의 삶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간다. 단순히 우리가 바스키아를 떠올렸을때 생각나는 스트릿 그래피티 아트에 국한되지 않고, 그룹 퍼포먼스나 단편영화, DJ, 앨범디자인, 조각, 패션, 콜라주,사진 작업 등 방대한 양의 작업과 넓은 활동 범위를 힙합, 노웨이브, 재즈, 포스트펑크, 뉴웨이브, 클래식 등 그가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았던 음악과 연결시켜 그의 예술 커리어를 따라가게 된다.

왜 좋아하게 되는가? 흔히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매력이라고 한다. 이미 아는 것보다는 모르고 있던 새로운 면들이 팝업처럼 튀어나오는 것에 우리는 전보다 더욱 이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스키아는 너무 유명한 예술가이다, 우리는 너무 알려진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도 거리를 둔다. 어떤 삶을 직접 겪어보지 않아 모르기에 단순한 형용사로 그를 정의하고자 할때도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그 깊이를 표면으로 재려고 하기도 한다. 파리 지하철에서 Basquiat의 전시 광고를 보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들 잘 모르는, 숨겨진 아티스트를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의 독자들도 대다수 알고 있을 바스키아의 전시는 너무 진부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그의 이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스타성을 상상하며 몰입할 수 있고, 너무나 유명한 수식어 뒤에 가려져있던 그의 실험적인 흔적들을 따라가며 작가의 삶 자체를, 작업의 깊이를 이해하게 된다.
프랑스 파리의 바스키아들
I want to get lost in space – 3 X 3 퍼포먼스 영상

한편, 전시를 보는 동시에 또 다른 작품세계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바스키아의 세계와 겹치고 충돌했다.프란시스코 헤 핀존 삼페르, 그는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콜롬비아인의 정체성을 가진, 페인터 라고만 정의할 수 없는 또 한명의 스타다. 그를 스타,라고 정의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바스키아가 작업안에서 자신만의 유니버스를 구축해 정체성이 확연히 녹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 안과 밖에서 끊임없는 영향을 주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그 활동에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것 처럼, 프란시스코의 작품활동은 마치 그의 또다른 평행세계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이미지의 수집들을 템포와 운율에 맞춰 늘어놓는 DJ나 음악 프로듀서와 동일시하며, 주변 사람들의 초상에 신앙이나 영적인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을 겹쳐 보이게 함으로써 피상적인 믿음을 객관적으로 보고자 한다.
프랑스 파리의 바스키아들
The spiritual digestion of live music (라이브 뮤직의 영적인 소화)의 전시의 포스터
프랑스 파리의 바스키아들
퍼포머들의 모습 Credit – Félix Szpirglas

3월 1일 파리 19시, 페흐노 히캬흐(Pernod Ricard) 재단의 갤러리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The spiritual digestion of live music (라이브 뮤직의 영적인 소화)의 전시의 오프닝에, 다양한 연령대의 각각의 사람들이 모여 커다란 페인팅이 걸려 있는 테이블을 기점으로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프란시스코가 있었다. 복서를 연상시키는 믹싱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파리 보자르 출신의 세명의 젊은 퍼포머들은 시, 노래, 춤이 멜로딕하게 결합된 형식으로 둘러싼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각각 다른 공기의 파장을 일으켰다.

I NEED ART LIKE I NEED GOD

바스키아는 그림에 존경하거나 친애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써넣거나 아티스트의 창작물의 제목을 적었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그리고 오헬리앙 비예이야흐와 달리아 헤베카는 티셔츠나 반바지에 실크스크린으로 트레이시 에민의 이름과 전시 제목, 요셉 보이스의 이름을 프린트하고 손을 은색으로 칠했다. 은빛으로 빛나는 글들이 공기 중의 음과 함께 어우러져 마음에 더 깊게 들어오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며, 이 이름들처럼 그 또한 빛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때로 유명세라는 것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동시에 벽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들이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파리, 뉴욕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에, 그가, 또는 그들이 얼마나 실험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려 하는지 우리는 때로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시도하고 실현하고, 자신을 그 안으로 내던져보며 닫혀 있던 것을 끝없이 열어간다.
그리고 그 어디에선가 열렸고, 누군가와 함께했고, 무엇이든 시도했던 흔적들은 다시 천천히 끌어내어져, 후에 그 흔적을 뒤밟아 보는 사람들에게 스타로써 무한한 매력을 발산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