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얼마나 친절해질 수 있을까. 낯선 장소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이 호의를 건넨다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타인과 어느 정도나 거리를 두어야 하는 걸까. 박문영의 단편 <귓속의 세입자> (**[SF 보다 vol. 1 얼음](문학과지성사, 2023) 수록)를 읽으며 떠올린 질문이다. 소설은 사람들 사이의 적정거리를 묻는다.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꿉꿉해서 숨이 막히고, 너무 멀면 건조하고 삭막해서 힘들다. 온도로 말하자면 더위와 추위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상태가 이상적이지만, 우리는 대체로 덥거나 추운 상태에 놓인다. 관계의 맞은편에 늘 타인이 있는데, 타인이 원하는 온도는 높은 확률로 나와 다르다. 적정거리, 적정온도란 도통 합의점이 나오지 않는 골칫거리다. 그리고 소설은 적정함에 도달하기 위한 분투를 그린다.

주인공 ‘해빈’은 회사 사람들과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체류한다. 한국이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장은 이때다 싶어서 월드컵 경기장으로 떠나는 워크샵을 기획한다. 비용도 모두 회사 부담이다. 회사라고 해도 고작 3명이 전부인지라 어디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 상사가 좋은 뜻으로 추진하는 일정이니 강하게 끊어내기 어렵다. 더군다나 경기장 주변은 애국심으로 불타는 사람투성이다. 낯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끈끈하게 뭉친다. 매일 밤이 술자리다. 해빈은 얼굴에 태극기를 그리고 한복을 입은 꼴로 억지로 축구 응원에 참석한다.

왁자지껄한 인간들과 대조적으로, 해빈의 귓속에 세 들어 사는 외계인은 조용하고 침착하며 예민하다. 그는 살얼음처럼 가녀리고 반투명하다. 귓속에 들어가도 괜찮을 만큼 작고 가볍다. 해빈은 산책로를 걷다가 풀숲 사이에 있던 그를 우연히 만난다. 그는 해빈의 몸에 잠시 머무르게 해달라고, 자신은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며 그저 가만히 머물기가 지루할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런 요청을 받는다면 순순히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정체 모를 이방인을 환대할 수 있을까? 사람을 싫어하는 해빈이 그를 받아들인 이유는, 인간과 달리 그에게서는 온기도 질량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입자가 제안하는 대가는 “시시하고 쓸데없는 아름다움”에 불과하다. 그는 겨우 “덧없고 하찮은 빛”을 내는 존재다.
타인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해빈은 외계인의 서늘함을 동경한다. 경기장 응원석처럼 너무 많은 인간이 한데 뭉친 자리에는 열기가 들끓는다. 편을 나눠 겨루기까지 하면 공기가 더욱 뜨거워진다. 해빈은 속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추레하고 구질구질한 걸 정겹다고 할까. 왜 낡고 정신 사나운 걸 따뜻하다고 할까.” 하지만 동시에 해빈은 자신이 한낱 인간이라는 사실을 안다.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 한가운데에 있음을, 그리고 관계가 완전히 동결되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안다. 아무리 타인의 존재에 진저리쳐봤자 해빈은 “도움을 받고 피해를 주면서 얽혀 들고, 핑계를 만들고, 합리화”하며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서늘함보다는 뜨뜻함에 치우칠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타인의 선의와 호의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빈은 마치 자신이 외면하고 지냈던 ‘정겨움’을 발견하고 사랑하게 된 듯하다. 그러나 박문영의 소설에는 늘 불협화음이 있다. 해빈의 이야기는 그리 착하게 흐르지 않는다. 타인의 온기는 여전히 꺼림칙한 성격을 지닌다. 해빈은 선택적으로 타인을 대한다. 아름다운 빛을 뿜는 외계인은 받아들이지만, 이탈리아 골목에서 만난 어느 노인의 초대는 거절한다. 노인이 해빈 일행보다 취하고 피로해 보이기 때문이다. 해빈은 핸드폰을 꺼내 통역 앱을 켜는 일조차 번거로워하며 어정쩡한 인사만 남기고 떠난다. 해빈이 사람은 타인과 얽히며 살 수밖에 없다는 대화를 나눈 직후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때 해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덕분에 해빈의 변화는 다소 이지러진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모든 초대를 수락해야 한다는 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무턱대고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어떻게 타인에게 우호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어떻게 서로 안전한, 안심할 만한, 편안하게 느껴지는 거리를 설정할 수 있을까? 따뜻함이 뜨거움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그러면서 너무 차가워지지 않도록 보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에 맞는 노랫말이 있다. “네가 한 발짝 두 발짝 멀어지면, 난 세 발짝 다가갈게” “네가 한 발짝 두 발짝 다가오면 난 그대로 서 있을게”. 여기서 ‘나’는 상대방의 움직임에 충실히 대응한다. 상대가 다가오든 멀어지든 묵살하지 않고 호응하는 반응을 돌려준다. 해빈이 외계인 세입자에게는 성공하고 노인을 향해서는 하지 못한 일이다. 소설의 끝에서, 해빈이 걸음을 멈추자 해빈의 뒤에서 걷던 사람은 그에 맞춰 잠자코 기다린다. 간단하고 본질적인 규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