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가 해외 신명품  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사진=자크뮈스 홈페이지
패션업계가 해외 신명품 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사진=자크뮈스 홈페이지
직장인 박모 씨(34)는 한 해에도 수십 벌씩 옷을 살 정도로 새로운 패션에 관심이 많지만 정작 누구나 알 만한 명품은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대신 패션 잡지를 뒤지고 온라인 패션 사이트를 검색해 유럽이나 미국 등의 유명 디자이너 제품 정보를 얻습니다. 구매는 주로 해외 직접구매를 합니다. 국내 백화점 등에 입고되기 전에 남들보다 먼저 옷을 착용하고 싶어서입니다.

박씨는 “누구나 다 아는 로고가 크게 박힌 명품 브랜드 옷에는 관심 없다”며 “식상한 데다가 가격도 비싸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으며 디자인도 다양하지만 대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이 좋다”고 강조합니다.
톰브라운의 인기 제품인 '클래식 4바 메리노 울 카디건'. 사진=한경DB
톰브라운의 인기 제품인 '클래식 4바 메리노 울 카디건'. 사진=한경DB
자크뮈스, 스튜디오 니콜슨, 가니, 디젤, 쿠레주, 아미, 메종키츠네, 르메르, 톰브라운, 알렉산더왕, 사카이…. 이 분야에 각별하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면 낯선 이름들이지만, 박씨처럼 패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즐겨 찾는 ‘신(新)명품’들입니다.

신명품은 기성세대 명품인 일명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대신 20~30대가 선택한 해외 고가 패션을 뜻합니다. 최근 몇 년 새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구찌, 프라다 등 익히 알려진 명품 브랜드 대신 새로운 명품 브랜드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른바 “비싸고 남들 다 입는 명품은 거부한다”는 인식에서입니다.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는 지난달 신명품 인기 덕분에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 거래액이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 카테고리는 지난해 5월 새로 생겼는데, 해외 컨템퍼러리 브랜드 라인업이 늘어나면서 지난달 거래액이 론칭 당시보다 5.5배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세대별 매출 비중은 20~30대가 72%에 달합니다. 이 카테고리에는 아페쎄(A.P.C), 비비안웨스트우드, 가니, 하이, 자크뮈스 등이 들어와 있습니다.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을 살펴보면 꼼데가르송의 기본 와펜 반소매 티셔츠, 아페쎄의 로고 반소매 티셔츠를 비롯해 자크뮈스의 르 밤비노 토트 숄더백, 비비안웨스트우드의 메이페어 바스 릴리프 펜던트 목걸이 실버 등이 있습니다.
알렉산더왕 가방 제품. 사진=한경DB
알렉산더왕 가방 제품. 사진=한경DB
신명품은 패션 대기업들 매출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해 매출 2조1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2% 증가했습니다. 국내 패션업계에서 처음으로 매출 2조원을 돌파한 것입니다. 영업이익은 1800억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80%가 폭증했습니다. 아미, 메종키츠네, 르메르, 톰브라운 등 ‘신명품 4총사’를 앞세워 기존 갤럭시 등 남성복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 것이 주효했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대표 신명품으로 꼽히는 아미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뛰었습니다.

알렉산더 왕, 사카이, 크롬 하츠 등이 잘 팔린 덕에 신세계인터내셔날도 지난해 매출(1조5539억원)과 영업이익(1153억원)이 각각 7.1%와 25.3% 증가했습니다. 신명품은 무려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MZ세대가 주로 찾는 3세대 신명품 브랜드들은 기존 명품과 달리 합리적인 가격이 특징입니다. 의류 한 벌에 20만~50만원선, 가방은 100만원대로 명품 브랜드에 비하면 저렴하면서도 ‘나만 아는 브랜드’로 개성 표현하려는 MZ세대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올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명품'은 나를 위한 작은 사치로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탄생했습니다. 초고가의 기존 명품을 살 여력은 없지만 평범하고 싶진 않은 2030세대가 100만원 이하의 제품에서 만족감을 찾는다는 설명입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공식 수입 및 유통하는 메종키츠네. 사진=삼성물산 제공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공식 수입 및 유통하는 메종키츠네. 사진=삼성물산 제공
패션시장에서 신명품의 비중이 커지면서 국내 브랜드 위주로 사업을 영위하던 기업들도 해외 브랜드를 적극 유치하는 중입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전문기업 한섬은 지난해부터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가브리엘라 허스트, 베로니카 비어드, 스웨덴 패션브랜드 토템과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섬은 올해 하반기까지 해외 패션 브랜드 수를 두배 확대해 20여개로 늘린다는 구상입니다. 삼성물산도 신명품 브랜드 아미의 오프라인 매장 확대에 나서는 등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병행수입 시장도 커집니다. 롯데쇼핑의 e커머스 사업부 롯데온, 신세계그룹 e커머스 플랫폼 SSG닷컴 등 온라인상은 물론이고, 면세점, 대형마트, 중소형 패션기업들까지 병행수입을 통해 상품군을 늘리고 있습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주요 고객층인 MZ세대가 국내 브랜드나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보다 신명품에 열광하면서 패션기업들이 잇따라 관련 사업에 집중하는 중“이라며 ”당분간 신명품 브랜드 국내 판권 확보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