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향수, 공간이 되다.
‘Le Grand Numéro de Chanel(샤넬의 위대한 숫자)’ 전시가 작년 12 월 15일부터 올 1월 9일까지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 에페메르에서 열렸다. 프랑스에서 에르메스, 불가리, 루이비통에 이어 샤넬이 자신의 브랜드를 설명한 행사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감각을 활용하는 행사들이 많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번 샤넬 행사 역시 샤넬을 대표하는 5개 향수(넘버 5, 샹스, 코코 마드모아젤, 블루, 익스클루시브)를 테마로 구성해 향을 맡아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체험형 전시로 구성되었다. 한국에서도 지난 4월 8일까지 서울 북촌 휘겸재에서 샤넬 알쉬믹 향수 여정이 열렸는데, 파리와 서울에서의 행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샤넬의 대표 향수가 공간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Coco Mademoiselle 코코 마드모아젤

샤넬의 향수, 공간이 되다.
코코 마드모아젤은 사람보다 큰 체스 방에서 시작한다. 체스방에 있는 코코 전화에 번호를 누르면 향수 시향지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은 문구 중 하나를 받을 수 있었다.
‘Je suis invisible mais vous pouvez bientôt m’entendre au téléphone.’(나는 보이지 않지만 당신은 곧 전화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Vous trouverez bientôt un téléphone pour me joindre.’(당신은 조만간 나를 만날 수 있는 전화를 발견할거예요.)

해당 시향지에는 코코 마드모아젤이 뿌려져 있었으며, 우주 정거장 공간을 지나 전화 부스 공간에서 실제로 녹음된 전화를 들을 수 있었다. 방은 코코 마드모아젤의 색인 분홍빛이 도는 상아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유분방한 여성을 표현하듯 방을 이어주는 복도에는 그래피티로 ‘인생은 게임이다’, ‘코코 마드모아젤 당신 어디있나요?’와 같은 문구들이 적혀있어 딱딱하고 경직되지 않은, 활기찬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이어받듯 간단한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10번의 스쿼트였다! 이런 것들을 통해 샤넬이 코코 마드모아젤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샤넬의 향수, 공간이 되다.

Chance 샹스

샹스는 다른 향수들보다 최근에 나온 향수로, 동글동글한 병에 담겨 있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모델들이 볼링을 하는 광고가 나오면서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샹스(chance)는 프랑스어로 ‘기회’라는 뜻으로, 그 뜻을 반영한 방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샹스의 방은 무대 뒷편 무용수와 연기자들의 대기실로 구성되어 있고, 다음 방을 들어가기 전 연기자가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칩을 준다. 그 칩을 들고 뒷 공간으로 이동하면 샤넬의 카지노가 펼쳐지는데, 2015 F/W 오뜨 뀌투르 패션쇼의 카지노 축소판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 향수의 영감이 ‘기회는 나타나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고정되지 않는 것이다’에서 시작해 카지노와 무대 뒤편을 꾸며 설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3가지 종류의 게임이 있는데, 이 게임에서 이기면 샤넬 손거울과 샹스 미니 향수를 받을 수 있었다.

BLUE 블루

샤넬의 향수, 공간이 되다.
샤넬의 대표적 남자 향수 분위기를 이어받아 도시의 차갑고 시크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대적 도시 풍경을 지나면 파란 분위기의 도시적 바가 나온다. 바텐더가 위스키 잔에 준비된 석고 방향제를 맡아보게 해주는데, 이때 블루의 다양한 향을 맡아 볼 수 있었다. 이 공간은 다른 공간과 달리 편하게 앉아 쉴 수 있고, 각 테이블마다 작게 준비된 샤넬 향수 석고 방향제로 개인적으로 더 맡아보고 싶은 향들을 천천히 맡아볼 수 있었다. 다른 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백이 있었던 데서 여유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또 블루가 수평선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향수인 만큼 전체 공간이 바다의 짙은 군청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왁자지껄하고 휘황찬란한 공간들을 벗어나 심연에 들어온 느낌, 차분해지는 기분으로 휴식을 얻을 수 있었다.

Chanel No.5 샤넬 넘버 5

샤넬의 향수, 공간이 되다.
샤넬의 최초 향수이자, 현대 향수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넘버 5에서는 샤넬 향수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왁스로 하는 실링과정을 실제로 볼 수 있었으며, 원료들도 직접 향기를 맡아볼 수 있었다. 또한 샤넬의 예전 향수병 및 포장도 같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샤넬의 향수 세계를 보다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만든 샤넬 넘버 5 예술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또 샤넬에서 진행된 그동안의 광고가 넘버 5 향수와 함께 보여지며, 광고 당시에 입었던 모델들이 입었던 옷들도 전시되어 한층 몰입감을 높였다. 넘버 5는 너무나 유명한 향수이고 관련된 일화들이 많아 어떤 공간으로 꾸며질지 궁금했었다. 이 방은 보다 향수의 본질에 집중된 방이었다. 사넬의 향수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향수 자체를 이해를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이어서 다른 방과 차별점이 있었다.

Les Exclusifs de Chanel 익스클루시브 샤넬

최근 많은 향수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대표 향수 외에 좀더 예술적인 향수 라인을 내놓고 있는데, 샤넬에선 그 라인이 익스클루시브 샤넬 라인이다. 샤넬의 다양한 독점적 향수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향수가 갤러리로 재해석 되었다. 어두운 공간 속 움직이는 그림들 사이에 샤넬의 향수가 나왔다가 사라진다. 갤러리를 지나면 향수 심리상담사를 만나 여러 향수들을 추천받고 향을 맡아볼 수 있었다. 샤넬의 향수를 맡아보면서 원했던 향수의 느낌이나 평소 내가 좋아하는 향수 재료나 느낌을 이야기해 1932 향수를 추천받았다. 각각의 방에서 모은 시향지들은 처음 입장할 때 보관할 수 있는 파일에 넣어 간직할 수 있다.
샤넬의 향수, 공간이 되다.
이번 전시는 샤넬의 향수를 다양한 공간으로 재해석해 각각의 공간마다 다른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각 향수마다 어떤 공간이 펼쳐질지 상상하게 하는 재미가 특별났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게 했다. 또 각 방에는 그에 맞는 샤넬의 옷, 가방과 악세사리들이 비치되어 있어 향수뿐만 아니라 샤넬 자체의 전시를 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블루에서 위스키 잔에 석고 방향제를 넣어 시향을 하도록 한 것은 무드를 해치지 않고 몰입에 도움이 되어 좋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몰입형 전시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때그때 맞춰 바뀌는 전시들도 좋지만 한 브랜드 혹은 제품이 영감을 받았던 본질에 집중하는 전시들이 많이 만들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당 링크를 통해 전시관련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chanel.com/fr/parfums/grand-numero-chanel-loic-prig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