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훨씬 더 어려워진 피아노 연주

프란츠 리스트를 원망하며…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작가, 교육자, 후원자 등. 19세기 헝가리 태생의 인물 중 인물, 프란츠 리스트의 활동 리스트는 길다. 그 중에서도 정말 화려했던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는 당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 전까지는 클래식 음악이 귀족 등 제한적인 사람들만의 귀에 전달 되었다면 리스트는 모든 사람을 청중으로 삼았고, 그 유명세는 전무했을 정도라고 전해진다. 게다가 젊었을 때는 미남이어서 팬들이 따라다니며 연주를 듣는 도중 흥에 못이겨 기절도 많이 했다 하니, 아마 리스트는 아이돌의 원조 중 원조가 아닐까?

그가 남긴 작품의 엄청난 양 또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게 장난인가 싶을 정도의 가벼운 음악부터 21세기인 지금 들어도 아방가르드의 선두를 달리는 그의 후기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리스트는 우리 피아니스트들에게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 은인인 동시에, 피아노 연주를 훨씬 더 어렵게 만든 원망의 대상이라고. 니콜로 파가니니가 일으킨 바이올린 연주의 혁명을 피아노에서 실현하겠다고 작정하고 덤벼든 프란츠 리스트! 결과는 대성공! 그렇지만 원망 끝에 결국 다가오는 감정은 너무나도 창의적이자 예술적인 음악을 남긴 리스트에 대한 감사다. 예술성 뿐만 아니라 기교적인 면의 기발한 발상으로 인해 피아니스트들이 해내야 하는 어려운 테크닉의 범위가 말도 안되게 넓어졌지만, 어쩌면 단색의 소리를 가진 피아노라는 악기의 표현 범위도 그만큼 넓어졌기 때문이다.

II. 악보는 어디 있지?

또하나의 원망거리가 생각난다. 리스트는 독주회라는, 당시엔 생소했던 연주회 형식을 고착시킨 장본인이었다. 게다가 이 새로운 연주회 형식에 암보라는, 이런 말도 안되는 부담을 나를 포함한 후세 피아니스트들에게 보너스로 얹은 것이다. 한 연주회에서 악기 편성이 바뀌지 않는, 이른바 ‘독주회’는 당시 파격적인 컨셉트였다.

연주회라면 보통 갈라 스타일이나 버라이어티쇼 같은 게 대부분이었고, 특히 ‘리사이틀’이라는 표현은 시낭송회 등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명칭을 처음 독주회에 갖다 붙여 쓴 사람이 리스트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회를 기획·제공하는 사업은 티켓판매와 수익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을 텐데, 리스트는 그 명성과 스타덤에 피아노라는 악기 하나만 가지고도 전석 매진의 연주회를 이끌어 가는 데 충분했을 터다. 감히 누가 리스트와 무대를 같이 하겠는가! 그런데 이 유명 연주자 앞에는 악보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음악은 연주자의 머리속에 들어있었고, 악보도 없이 악기를 연주하는 경이로운 장면에 청중은 더욱 더 열광하지 않았을까? 사실 동시대 유명 피아니스트로 활약했던 클라라 슈만도 무대에서 암보(暗譜)로 연주했더니 비평가들한테 ‘어디 감히 그러냐’고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프란츠 리스트를 원망하며…
악보, 대사 등 무대에서 발표할 내용을 외우는 것은 청중 앞에 서는 예술가들이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어려운데, 악보를 외우기까지 해야 한다면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연주자의 긴장은 극에 달하기도 한다. 내 경우에도 무대에 나가기 전 긴장을 유독 많이 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암보에 확신이 없을 때다. 자다가도 악몽으로 깰 시나리오, 즉 연주 중에 갑자기 머리속이 하얗게 되면서 생각이 막히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나마 혼자 연주하는 경우에는 연주 중에 뭉개다가 어떻게 해서든 대처해 계속 이어갈 수 있겠지만, 오케스트라와 같이 연주하는 협주곡의 경우에는 다른 이야기이다. 보통 솔로악기의 협주곡은 암보로 연주하는 게 전통이어서 성공적인 연주를 위해 솔리스트는 솔로 파트와 오케스트라 파트를 온전히 머리속에 넣어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예를 들어 멈췄다 언제 들어와야 되는지 타이밍을 놓치거나(사실 그 순간들을 알려주기 위해 대부분 지휘자가 솔리스트와 눈을 맞추며 힌트를 주긴 한다) 솔로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복잡한 부분에서 만에 하나 박자를 놓치든가, 혹은 의도치 않게 곡의 다른 부분으로 튀어버리든가 하면 수습이 거의 불가능해서 최악의 경우로 연주가 멈출 수 도 있다. 아직까지 나에게는 (감사하게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사실은 이 지옥의 순간을 거의 경험할 뻔 한 적은 있다.

학창시절, 베토벤 협주곡 1번을 오케스트라와 처음 협연해보는 무대였다. 이 곡의 3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론도는 연주자를 골탕먹이기 참 좋다. 메인 주제가 돌고 도는 형식이라서 돈다는 의미로 ‘Rondo’ 라고 부르는데, 메인 주제가 담긴 부분을 A라고 칭하면 보통 ‘A-B-A-C-A-B-A’식으로 돈다. 계속 돌아오는 메인 주제 뒤에 이어져 발전되는, 그러니까 B와 C에 해당되는 부분들의 음악은 계속 바뀐다. 그런데 이게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연주를 곡의 순서대로 못하고 엉뚱한 부분으로 가버리기 참 쉽다.

무슨 곡이든 초연하는 무대는 특히 더 긴장이 되지만, 그날 오후 리허설은 순조롭게 마쳤고 연주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걱정거리는 없었다. 시간이 되어 무대에 오르며 “괜찮을거야” 하고 자기최면을 걸고 피아노 앞에 앉으며 물론 비상상황 같은건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는 사고여서 사고인 법! 뜬금없이 3악장 중간, 전혀 예상치 않았던 부분에서 기억에 구멍이 나버렸다. A-B-A 섹션을 무사히 통과한 후 악장의 중심 부분인 C섹션으로 들어가 연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부분은 짧지만 완전히 성격이 다른, 새로운 멜로디가 세 번 반복된다. 그때마다 이어지는 음악의 흐름은 서로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달라 도달하게 되는 도착지가 전혀 다르게 되어있다. 그리고 멜로디가 반복되는 사이사이에는 오케스트라의 간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간주의 길이는 불과 10초 내외이다. 라이브 연주는 몸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의 결과, 즉 실시간으로 악기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반응과 대처하는 동시에 다음에 뭐를 연주하는지의 내용까지 항상 생각하는, 그러니까 글자 그대로 극치의 멀티태스킹이다.

세번째 간주를 들으며 다시 들어갈 순간을 기다리면서 앞으로의 내용을 생각하는데, 갑자기 나의 뇌가 다음에 나오는 갈래길의 정보가 없다고 알려왔다! 계명 외우는 데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나인데 음들이 생각이 안 난다니 머릿속은 하얗게, 하늘은 노래지는 순간이였다. 10여초의 오케스트라 간주가 10년처럼 느껴지면서 “아! 멈출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식을 하며 좌절하고 있었다. 마침내 다시 들어갈 순간이 와서 세번째로 메인 주제를 연주하고 그 문제의 갈림길에 도달하면서 멈춘 연주에 극도의 수치심을 느낄 준비를 하고 있는 찰나! 갑자기 왼손이 저절로 왼쪽, 그러니까 저음부쪽으로 움직였다. 이 움직임 하나가 그토록 생각이 나지 않던 음들을 생각나게 하는 실마리가 되어 갑자기 악보가 머리에 그려져서 연주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청중은 물론 그때 내 머리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눈치를 못 챘겠지만, 진실로 십년감수가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날이었다. 이 15초 정도의 순간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고, 지금까지도 교훈으로 삼고있다. 사람의 뇌에는 우리가 자의로 인식하고 관장하는 의식과 관장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있는데, 악보든 대본이든 사람이 어떤 것을 배워서 외울 때에도 그 정보가 의식과 무의식 두군데로 다 간다고 한다. 우리가 임의로 액세스할 수 있는 이 의식 속의 기억은 정말 야속할 정도로 불안정하지만, 때때로 무의식의 기억이 의식을 돕는다고 하던데 이게 그때의 내가 아닐까 생각한다.

곡을 외워서 연주를 하려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의식적인 암보를 하게 된다. 일단 각 성부의 계명도 다 외워야 하고 화음, 베이스라인, 그리고 그에 따른 손의 위치와 느낌 등 최대한 많은 양의 정보를 기억하도록 노력해야 된다. 그러나 아무리 연습을 많이 했어도 일단 무대에 나가면 언제 어떤 사태가 일어날 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놓지 않고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 혹 잠시라도 방심하면 꼭 실수를 하게 된다. 악보가 바로 앞에 있다고 해서 연주가 더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악보를 기억 못할 염려는 안 해도 된다. 프란츠 리스트 때문에 거의 모든 독주곡과 협주곡을 외워서 쳐야 되는것은 피아니스트의 숙명이 되어버렸다.

리스트의 음악은 무조건 두들겨야 한다?

리스트의 피아노 음악에 대한 보편적인 편견을 들자면 기교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것은 두 말 할 나위 없고, 그의 곡은 일단 피아노 건반을 아주 세게 두둘기고 봐야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사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큰 소리를 내라고 지시한 부분이 많긴 하다. 당시 피아노는 지금처럼 주물로 틀을 만든 단단한 피아노가 아니었다. 그때는 나무와 금속을 같이 썼는데, 그런 피아노는 상대적으로 물리적인 충격에 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리스트는 연주회당 피아노 하나를 부쉈다고 하는 여담도 있다. 그가 즐겨 연주하던 피아노가 뵈젠도르퍼 (Bösendorfer) 였던 것은 그 브랜드의 피아노가 좀 덜 부서져서라나~! 리스트의 연주 스타일은 무척 화려했고, 그의 작품들은 큰 소리를 요구하는 부분에 연주자가 온몸의 힘을 동원해 소리를 내야 제 맛이 나기는 한다. 그러나 리스트의 작품세계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큰 소리를 내는 부분보다 오히려 작은소리로 연주해야 되는 부분들이 사실 훨씬 더 많다. 비르투오조 스타일의 곡보다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곡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된다.

III. 기절할 것 같아!

리스트의 명성은 당시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그가 연주회를 열면 팬들이 몰려다니며 연주 중간에 기절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됐다. 혹 리스트가 청중에게 손수건이라도 던지면 서로 가지려고 몸싸움을 하며 찢기도 하는, 말하자면 우리 시대 록콘서트의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사람들이 연주의 어떤 부분에서 기절을 했을까? 상상하건대 큰 소리가 나는 부분보다는 말 할 수 없이 섬세하고 작은 부분에서 그랬을 것 같다. 열정적으로 큰소리를 내며 피아노 건반에 매달리는 리스트의 모습을 보면 감탄을 했겠지만, 오히려 여린 부분들을 정말 작고 정교하게, 섬세한 연주를 하는 리스트의 모습을 보면서 청중은 숨도 잘 못 쉬었을것 같다. ‘사랑의 꿈’ 같은 느리고 서정적인 곡이나 ‘La Leggierezza’, Mephisto Waltz No. 1 같은 곡에 나오는, 아주 작고 섬세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부분들을 연주하는 리스트의 라이브 연주를 듣다 마침내 기절하는 청중을 상상해 본다. 혹시 나도 거기 있었으면 기절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