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나의 세상'과 내면의 힘…장애에 대한 쓸쓸한 찬사
1 Marc C. Patterson, “A Patient as Art: Andrew Wyeth’s Portrayal of Christina Olson’s Neurologic Disorder in Christina’s World”, Journal of Child Neurology, 2017, Vol 32(7), 647-649


앤드류 와이엇(Andrew Wyeth, 1917-2009)의 <크리스티나의 세상(Christina’s World)>(1948)은 어서 클락의 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도 묘사가 나올 정도로 20세기 미국 회화 중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그림 중 하나다.

작품은 한창 추상표현주의가 각광받던 1948년의 작품이지만 풀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세세히 그려내는 몹시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그려져서, 제스쳐를 중요시하는 당대 예술애호가들의 주류 취향에서 보면 실망스러우리만치 전통적이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풍경과 그림 속 여성이 관객에게 주는 감정적 요소들이다. 마른 풀로 가득 차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는 드넓은 들판에 연한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비스듬히 몸을 세워 앉은 여성의 뒷모습이 보이는데, 그녀는 저 멀리 지평선 위로 선 회색 집을 올려다보고 있다. 서서 힘차게 걷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앉아 건물을 향해 아련히 팔을 뻗고 있는 여성을 보노라면 영원히 목표지점에 가닿지 못할 거 같은 예감에 안타까운 심정이 된다.

이러한 감정적 요소는 분홍 드레스의 여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더욱 증폭된다. 바닥을 짚은 두 손은 혈색 없이 회색 빛을 띄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랐으며 손가락이 불편하게 굽어든 듯 보인다. 몹시도 야윈 팔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팔의 근육이 전무하다시피 하여 관절이 지나치게 커 보인다. 상반신 척추와 골반부위의 연결이 꺾여 있는 듯 보일만큼 불편한 각도를 이루며 엉덩이 아래로 다리는 무기력하게 매달린 형상이다. 무릎 아래 드러난 종아리 또한 팔만큼이나 앙상하고 발등과 종아리 앞면이 180도에 가깝게 펴지도록 발목에 힘이 풀려 있다. 이런 요소들을 관찰할만큼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이 여성이 신체적 이상을 갖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와이엇이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 이 사람은 어떤 의학적 문제를 겪고 있을까? 그리고 와이엇이 불편한 몸을 가진 모델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크리스티나의 세상'과 내면의 힘…장애에 대한 쓸쓸한 찬사
Andrew Wyeth(1964)/ AP통신

이 그림은 작가가 자신의 여름별장이 있는 메인주 쿠싱 지역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곳에서 아내 벳시의 소개로 이웃집 올슨씨 부부와 그 가족을 알게 되었고 종종 그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크리스티나의 세상>은 올슨 부부의 딸인 애나 크리스티나 올슨의 초상화이다. 와이엇이 쿠싱의 여름별장의 이웃집 사람으로 크리스티나 올슨을 만난 것은 1939년, 그녀가 약 48세이던 해이다. 이 시기의 크리스티나는 걷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크리스티나의 세상>을 소장한 뉴욕 현대미술관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크리스티나는 “소아마비로 추정되는” 근위축증을 가지고 있어 30대 초반에 걷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사망 직전인 74세 이전까지는 보조를 받는 것, 휠체어 타는 것을 극구 반대하고 근위축이 일어난 사지를 끌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 와이엇은 올슨이 바닥을 쓸며 다니는 뒷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크리스티나의 세상>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를 처음 마주한 와이엇에게는 당혹스러운 장면이었으리라 짐작 가능하다.

필자는 이 작품의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늘 작품을 마주하면 편치 않은 감정을 느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주요한 원인은 와이엇이 올슨의 신체를 이용해 장애인에 대한 불행 포르노를 제공하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 속 그녀의 증상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이번 컬럼에서는 우선 올슨의 병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이를 회화로 남김으로써 와이엇이 관객에게 던지고자 한 메세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앞서 말했다시피 가장 널리 알려진 올슨의 추정 진단명은 소아마비이지만 당시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내린 기록이 없어 재검토가 요구되는데, 현재까지 이뤄진 여러 연구 및 발굴된 아카이브 자료들을 분석해보면 크리스티나에게 샤르코 마리 투스 질환 (Charcott-Marie-Tooth disease·CMT)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질환은 일종의 유전성 질환으로, 손과 발의 말초신경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인해 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 10만명 당 30여명 정도 발생하는 희귀 질환인 CMT 환자는 발과 손의 근육들이 점점 위축되어 힘이 약해지며, 샴페인 병을 거꾸로 세운 것과 같은 다리 형태 등 발모양과 손모양의 변형이 발생한다. 환자들의 증상은 유전자 돌연변이의 종류에 따라 거의 정상에 가까운 가벼운 상태에서부터 보행에 도움이 필요하거나 혹은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매우 심한 정도까지 다양하다. 이 질환은 천천히 진행되며 수명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기록 자료를 통해 크리스티나의 병세가 서서히 진행된 것이 확인된다. 3세 무렵부터 발 바깥면을 사용해 걸음걸이에 약간 뒤뚱거림이 있었고 13세를 즈음하며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또한 그럼에도 “밝고 호기심 많고 식욕이 많았다.” 19세때의 기록에는 “배의 노를 젓거나 나무를 오르고 말에 마구를 채운다던지 마차를 모는” 등의 다양한 활동이 가능했다. 다른 한 편 크리스티나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세게 넘어졌다”는 언급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이 즈음부터 차차 균형 잡는데 이상을 겪기 시작하여 바로 서려면 손으로 사물을 짚어야 했고 걸을 때 직선으로 걷지 못하고 좌우로 뒤뚱거리다 넘어지는 일이 잦아져 그녀의 어머니가 무릎 보호대를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다만 이때까지는 손과 팔에는 이상이 없어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26세가 되었을 때 이미 보조없이는 한 번에 서너 걸음 이상은 걸을 수 없게 되었고 손이 떨려 정교한 작업이 불가하여 전에 손으로 하던 일을 하기 위해 팔꿈치, 손목, 무릎을 이용해야 했다. 병세가 점진적으로 악화된 상기 병력을 살펴보았을 때 크리스티나가 앓은 병은 발병 초기 가장 심한 이상증세를 보이는 소아마비보다는 운동근육세포에 생긴 이상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혹자는 척추 근육 위축을 가져오는 전각세포질환(anterior horn cell diseas)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태어나 첫 몇년 중 병세가 드러나고 빠른 속도로 악화되기 때문에 이 또한 올슨의 병명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크리스티나가 의학적 진단을 받은 것은 26세때 보스턴 시립병원에서 받은 한 번이 전부다. 이때 병원은 일주일 간의 관찰과 검사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진단결과를 내리지 못했고 그저 “이때까지 살아온 대로 살라”고 조언했다. 병세를 겪는 입장에서 이런 의사의 언사는 얼마나 황망한 것이었을까. 그런데 크리스티나 올슨에 대한 개인적 기록을 검토하며 새로이 인지하게 된 것은, 그것이 천성이든 노력에 의한 것이든 간에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명랑하고 쾌활한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서서히 늘어가는 신체적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낙담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남겨진 것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모델의 신체적 이상을 볼 거리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다소 경감되는 듯 하다.

와이엇은 한 인터뷰에서 올슨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슨의 처지를) 절망적이라 보았지만 나는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삶의 성취를 일궜는가를 제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만일 이 그림을 본 관객이 그녀가 신체적으로는 한계를 가졌을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난 내가 목표로 한 바를 이룬 셈이다.”

작가의 이 언급은 비단 자기 그림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오랜 기간 올슨을 지켜보며 본인이 느꼈던 바를 솔직히 토로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크리스티나 올슨은 <크리스티나의 세상>을 퍽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앤디(작가)는 내가 어디에 가고싶어 하는지 알고 그곳에 나를 그려넣었다. 이제 더 이상 갈 수없게 된 지금, 나는 그 그림을 떠올린다. 그러면 나는 다시 그곳에 가 있다.” 라는 그녀의 말에서 이 그림에 대한 그녀의 긍정적 평가를 읽을 수 있다. 물론 여전히 개운치 않은 부분들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위의 올슨의 말은 와이엇의 부인 벳시가 쓴 책에 실린 것이니만큼 편집 과정에서 와이엇의 입장이 개입했을 여지가 있다. 또한 이 그림의 영감은 올슨에게서 받았지만 그림 속 여성의 머리와 상반신 부분은 올슨보다 거의 30살이나 어린 벳시를 모델 삼아 그렸다는 사실은 와이엇이 ‘젊고 아름다우나 가련한 운명을 가진 여성’이란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한 것이 아니냔 의심을 여전히 지우기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엇이 1948년 맥베스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보내며 “(드레스 입은 여성 부분을) 지우고 황야만 남겨서 보는 사람이 크리스티나가 없이 그녀의 존재를 느끼도록 할지” 를 고심했다는 점에서 <크리스티나의 세상>에 대한 작가의 양가적 감정과 그 모순 사이에서의 깊은 고민이 읽힌다. 이웃이 맨바닥을 기어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며 느끼는 당혹감과 크리스티나 올슨이 자신의 신체적 한계에 짓눌리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수용하여 내린 결단임을 알았을 때 갖게 된 존경심, 또한 남들처럼 걷고 뛰고 손으로 섬세한 자수나 요리를 하는 등의 일상을 누리다 점점 그 자유를 잃은 자에 대한 연민과 존엄성을 가진 독립적인 인간에 대해 연민을 가져선 안된다는 반성의식의 그 사이에서 와이엇은 오랜 기간 자신의 시선의 위치를 찾고자 섬세하게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티나의 세상>은 올슨 내면의 힘에 대한 와이엇의 찬사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