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아티스트가 모여드는 베를린에서 아티스트는 어떻게 삶을 꾸려 나갈까. 이곳에서도 역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는 아티스트부터 수십 명의 어시스턴트와 직원이 있는 중소기업형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아티스트까지 너무도 다양한 형태로 거주하고 작업하는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접할 때면 미술 현장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미술 시장과 상업 갤러리 시스템의 비정함과 항상 합리적이지만은 않은 그 논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미술 현장의 한 축으로서 아티스트를 지원하고, 작품을 구매 및 소장하려는 컬렉터에 전문적 지식을 제공하며 연결하는 상업 갤러리가 예술과 삶을 잇는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많은 아티스트가 있는 도시인 베를린의 미술 시장은 어떨까. 내가 경험한 베를린의 미술 시장은 자본주의에 의해 추동됨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뉴욕, 런던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점잖은 태도로 상업 갤러리 본연의 목적과 가치를 추구하는듯 보인다.

지난 칼럼에서 다룬 베를린 비엔날레가 거칠지만 자유롭게, 다양성을 포용하며 이 도시의 특징을 나타낸다면 베를린의 갤러리는 닮은듯 다르게 이 도시의 에너지를 다가가기 편안하게 다듬어진 모습으로 전한다. 이곳 미술 시장에서는 매년 여러 이벤트가 열리는데, 4월의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 (Gallery Weekend Berlin), 갤러리는 물론 미술기관과 컬렉션, 폐공장을 개조한 빌헬름 할렌(Wilhelm Hallen) 같은 장소와도 연계해 9월에 일주일 동안 열리는 페스티벌인 베를린 아트 위크 (Berlin Art Week), 공항이었던 템펠호퍼 (Tempelhofer Airport)에서 열리는 포지션 베를린 아트 페어 (Position Berlin Art Fair) 등이 있다.

그 중 2005년에 시작해 올해로 19번째 에디션을 개최하는, 가장 긴 역사를 지닌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을 소개하며 베를린 미술 시장의 한 면을 살펴보려 한다.

베를린의 갤러리들이 협력해 2005년 설립한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은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0년과 2021년, 9월에 열렸던 에디션을 제외하고, 매년 봄, 주로 4월 마지막 주 금요일과 주말에 개최되는 베를린 미술 시장의 주요 이벤트로 50여 개의 갤러리가 참여해 자신들의 소속 아티스트의 전시를 각각의 갤러리 공간에서 선보인다.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이벤트인 만큼 참여 갤러리가 주력해 소개하는 아티스트의 높은 수준의 전시를 보여 주기에 미술 애호가와 관객에게는 일종의 하이라이트 집합을 볼 수 있는 즐거운 기회이기도 하다. 더불어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은 유명 갤러리뿐 아니라 신생 갤러리의 참여를 북돋는 동시에 전체 참여 갤러리 수가 50여 개가 넘지 않도록 유지해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잘 짜여진 틀 안에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국내에서도 아트 페어나 비엔날레 같은 국제적 이벤트가 열리는 시기에 갤러리 나이트 등 갤러리들이 협력한 프로그램이 제공되나 간헐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개최된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과는 차이가 있다.

올해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린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에는 총 55개의 갤러리가 참여해 80여 명의 아티스트의 전시를 선보였고, 깊은 인상을 남긴 좋은 전시들 중 몇 전시를 소개한다.

2012년에 문을 연, 비교적 신생 갤러리인 알렉산더 레비(Alexander Levy)에서 선보인 안네 덕희 요르단(Anne Duk Hee Jordan)의 전시는 익숙한 아티스트의 이름에서부터 눈길을 끌었다. 1978년 한국에서 태어났고 독일에서 자란 요르단은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로서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도 소개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프리 다이빙을 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관심을 확장해 인간과 비인간의 복합적 관계, 수중 세계 등을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로봇 생물 같은 오브제 및 멀티미디어 설치 작업을 통해 탐구한다. 자칫 어렵거나 무겁게 느끼기 쉬운 주제는 작가 특유의 유머를 더한 작업으로 즐겁게 경험할 수 있고, 미지의 세계를 두려움보다 경외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게 돕는다. 동시대 사회 구조를 반영하고, 과학적, 정치적 주제 등을 비평적으로 다루는 젊은 아티스트를 선보이는 갤러리 알렉산더 레비의 개성이 돋보이는 전시이기도 하다.
뉴욕 런던과는 달라! 베를린에서 아티스트가 사는 법
뉴욕 런던과는 달라! 베를린에서 아티스트가 사는 법
뉴욕 런던과는 달라! 베를린에서 아티스트가 사는 법
Installation view of Anne Duk Hee Jordan’s Worlds Away at Alexander Levy. Photo by Hyunjoo Byeon.
Installation view of Anne Duk Hee Jordan’s Worlds Away at Alexander Levy. Photo by Hyunjoo Byeon.
알렉산더 레비와 비슷한 시기인 2011년 시작한 소시에테(Société) 역시 젊은 아티스트를 주로 소개하는 갤러리로 소속 아티스트 대부분이 첫 개인전을 이곳에서 가지며 커리어를 시작한다. 소시에테는 테크놀로지가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 문화 생산과 소비 간의 관계, 정보의 순환, 정체성, 문화적 역사 등을 탐색하는 아티스트를 주로 선보이는데, 이번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 기간에 소시에테는 다문화적 배경 출신 - 독일과 몽골계 중국인 부모 아래에서 베를린, 베이징, 미국 남서부 등 지역에서 자라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티무르 시친(Timur Si-Qin)의 전시를 선보인다. 유기체와 합성체, 자연과 비자연, 인간과 비인간 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일반적 관념을 전복하는 작업을 주로 하는 시친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 위에 프로젝션을 이중으로 투영하며 이 같은 그의 개념을 시각화시키고, 관객으로 하여금 어두운 갤러리 공간 속에서 작업을 몰입해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뉴욕 런던과는 달라! 베를린에서 아티스트가 사는 법
Installation view of Timur Si-Qin’s Natural Origin at Société. Photo by Hyunjoo Byeon.
Installation view of Timur Si-Qin’s Natural Origin at Société. Photo by Hyunjoo Byeon.
그 외에도 갤러리 바스티안(Galerie Bastian)에서의 사이 톰블리(Cy Twombly), 막스 헤츨러(Max Hetzler)의 카타리나 그로세(Katharina Grosse), 케오베(KOW)의 히와 케이(Hiwa K), 에스더 쉬퍼(Esther Schipper)의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슈프뤼트 마거스(Sprüth Magers)의 차오 페이(Cao Fei) 전시 등 유명 아티스트의 전시뿐 아니라 이란 출신 여성 아티스트 10명을 선보이는 크로네 베를린(Crone Berlin)에서의 전시처럼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전시들이 펼쳐지고,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의 기간이 지난 후에도 약 한 달의 전시 기간 동안 각 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처럼 베를린에는 사회정치적 비평이나 강렬한 개성의 작업도 포용하는 상업 갤러리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존재하고, 국제성과 다양성을 갖춘 갤러리들과 미술 시장이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젠트리피케이션과 개발,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나날이 물가가 치솟고, 아티스트의 수에 비해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는 많지 않아 ‘섹시하지만 가난한’ 베를린을 떠나는 아티스트를 심심치 않게 접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투자로 여기거나 집 안의 데코레이션으로 접근하는 생각을 강화시키는데 기여하기보다 본연의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갤러리들이 베를린의 미술 현장에 있기에 이곳의 예술 에너지는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