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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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에 사는 나는 가끔 서울에서부터 대리기사 신세를 진다. 비용이 많이 들어 고민스럽기는 해도 음주운전을 할 수는 없는 법.

어쨌거나 무사히 집에 도착해 물 한잔 마시다보면 비로소 편안해진다.

그러던 며칠 전 ‘대리기사는 어떻게 돌아갔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야심한 새벽 두어 시쯤, 인적도 차도 없는 시골마을이다.

가로등도 없다시피 해서 달빛만 고요하고, 산으로 둘러싸여 귀신들이 놀기에도 좋은 곳이다. 양평이 제법 번잡한 곳이긴 해도 읍내에서 한참 떨어진 전원집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서울에서 대리기사를 부를 때면 편의점이라도 있는 역전까지만 가겠다고 하고 거기서부터 지역 대리기사를 또 부르곤 했다. 양평에서는 대리기사를 다시 태워가는 픽업차가 뒤따른다.

서울에서 집 앞까지 한 번에 도착한 건 며칠 전 처음 있었던 일이다. 미리 대리운전 콜센터에 이런 점을 문의해봤다.

바로 집까지 가고 싶은데 이게 가능한지, 그럴 경우 대리기사 분을 재워드려야 하는지 물었더니 “그건 손님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고 기사님의 선택사항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리고 잠시 후, 말쑥한 헤어스타일에 진회색 코트차림을 한 대리기사를 만났다. 40대 후반 쯤 보이는 남자였다. 뒷자리에 앉아 그에게 물어보았다.

“양평까지 가보셨나요?”
“시작한지 얼마 안 돼 처음입니다.”

막상 도착해보면 돌아갈 길이 막막할 것 같은데, 무슨 방법이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더는 묻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실은 감겼다) 어쨌든 집에는 가야하니까, 잠깐 자고 있으면 편하게 갈 수 있다.

종종 사는 게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리기사가 다 왔다고 깨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영원히 눈을 뜨고 싶지 않았을 거다.

“정말 아무 것도 없네요...”
대리기사가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차에서 내린 우리 두 사람은 새벽 찬바람에 오들오들 떨며 인사를 나누었다. 아무 것도 없지는 않다. 숲과 흙냄새가 있다. 마침 밤안개가 낮게 깔렸고, 늑대 울음소리만 더하면 전설의 고향이다. 나는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양평역까지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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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가면 PC방도 있고 편의점도 있으니까 몇 시간 기다리시면 될 거예요”
“아뇨, 괜찮습니다. 이게 우리 일인데요” 그는 정중히 사양하고 돌아섰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가 해야 할 말을 그가 하고는 걸어갔다.
정말 이렇게 그냥 보내도 되는 걸까...?

그의 뒷모습은 언덕 아래로 조금씩 사라져갔다. 지코의 노래처럼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 걸어가며 사라졌다. 나는 잠에서 덜 깬 몽롱함으로 문득 그 장면이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슴푸레한 산등성이와 검은 나뭇가지들의 실루엣, 배경음악만 있었다면 느와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정도는 될 만한 것이다.

그는 나를 구해주고 조용히 떠나는 역할이겠지. 만약 내가 여인이었다면 ‘카사블랑카’가 되었겠지만.

이튿 날 예정된 강연에서 내가 “대리기사가 어떻게 돌아갔을까요?”라고 이야기를 꺼내자 객석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대리기사들만의 콜택시 시스템이 있을 거라는 것, 역전까지 걸어가 서울행 첫차를 탔을 거라는 의견 등등.

그 정도는 나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그 시간에 거기까지 데리러 와주는 시스템이 과연 작동했을까 싶다. 그리고 역전까지 걸어갔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렸을 텐데... 그러다가 음악 이야기로 질문이 이어졌다.

“마지막 장면의 배경음악이 재즈라면 어떤 곡이었을까요?”

‘그래, 재미있는 순간이구나!’

고전적인 분위기의 ‘He’s Gone Away’가 어땠을까? 흑백영화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로(미국 민요), 백인 여가수 조 스태포드(Jo Stafford)가 원조격이다.





다만 요즘 시대에 듣기에 너무 낡은 것이라면 현대적인 재즈버전으로도 좋은 게 있다. 기타 연주자 팻 메스니(Pat Metheny)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의 듀오녹음.




이 버전은 어쿠스틱 스트링사운드가 쓸쓸한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따듯한 온도를 품고 있다. 재즈라는 게 같은 곡이라도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 것이다 보니 비교 감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더 결정적이라 할 만한 곡은 한참 후에 생각이 났다. 재즈디바 셜리 혼(Shirley Horn)이 부른 ‘Where Are You Going?’이라는 노래. 자글거리는 LP레코드로 듣고 있자면 한 없이 빠져들게 된다.

1961년 셜리 혼이 발표한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으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바비 스콧(Bobby Scott)의 오리지널이다. 셜리 혼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과 담담하게 따라가는 단조의 피아노 반주는 코트 깃을 올려세우고 걸어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영화처럼 그려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궁금했던 건 ‘어디로 갔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갔을까’ 였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으로 그 궁금증을 풀어보려 애쓰는 걸 보면 참 할일 없는 사람이구나 싶겠지만, 나는 종종 이러면서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혹시 그는 어디로 간 게 아니라 어디론가 슬쩍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그럴 수 있었다면 서로 홀가분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