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려도 괜찮아, 지구만 안 아프다면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가는 지금, 모두가 ‘여행’을 이야기한다. 초저가 항공권과 여행상품이 시끄럽게 쏟아지고, SNS엔 여행 인증샷과 후기로 가득하다. 나도 그랬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여행 전날 트렁크의 문을 가만히 닫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 이렇게 계속 여행해도 괜찮을까?’

세계인이 여행을 다니면서 지구 곳곳은 빠르게 파괴됐다. 세계 탄소배출량의 8~12%가 관광산업에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여행을 멈추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급진적인 말들은 그저 위선이거나 쓸데없는 강요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 이럴 때 우리 스스로 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그래, 지구를 지키는 여행을 하자.”

지속 가능한 여행은 ‘플라스틱을 줄이자’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한다’는 류의 강압적인 기준이 아니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소비할지, 언제 떠날지, 어떻게 다닐지 등 여행의 모든 과정을 고민하는 하나의 사고방식이자 태도다. 이미 전 세계엔 이런 여행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여행사나 도시, 기업이 많다. 이런 여행을 기획하는 여행사 400여 개와 여행자를 연결하는 회사(리스펀서블트래블)가 있고, 지역 공동체가 문화유산을 경제적 자산으로 인식하도록 돕는 곳(글로벌헤리티지펀드)도 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지금까지의 여행과 다르다.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지역과 시기를 피하고, 자동차와 비행기 대신 기차와 자전거를 타고, 더 길고 여유롭게 일정을 잡는 것. 조금 수고스럽지만 더 적극적인 여행도 있다. 북디퍼런트, 키와노, 그린펄, 에코비엔비 같은 친환경 호텔 예약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미국의 던튼핫스프링스, 알래스카의 포트그래햄, 캄보디아의 헤리티지워치는 그 지역의 오래된 역사를 복원하거나 소수민족의 삶에 도움을 주는 여행지다. 인도네시아 외딴 섬 숨바에 있는 마숭이에코로지호텔에 머물면 20세 전후의 현지인들이 어엿한 호텔리어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행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지역 공동화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사라지거나 파괴될 수 있음을 이들은 증명한다.

왜 이렇게 피곤한 여행을 해야 하냐고 묻지 않아도 된다. 호주 와일드부시럭셔리는 2만3000㎡(약 735만 평) 규모의 보호 구역 안에 농가를 세심하게 개조해 꾸민 숙소가 있다. 태즈메이니아에는 국립공원 끝자락에서 태양광 객실과 캠핑장을 갖춘 후옹부시리트리트가 쏟아지는 별과 함께 우리를 맞이한다. 자원봉사와 환경캠페인을 수행하며 하는 여행도 곳곳에 있으니, 그저 여행을 조금 더 까다롭고 수고롭게 계획하면 될 일이다. 이런 여행이 주는 행복은 그 크기를 잴 수 없다. 단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는 것 이상의 뿌듯함으로 가득할 테니.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의 저자 홀리 터펜은 착한 여행에 대해 한 줄로 요약한다. “여행의 빈도는 줄이고, 그 목적과 의미는 분명히 하되, 더 먼 곳까지 느리게 다녀보세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